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유달준 유안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학창 시절 도덕 교과서에서는 사회규범의 일종인 법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설명돼 있었다. 그렇다면 법과 상식의 관계는 어떠할까. 정확히는 법리(法理)와 상식의 관계를 묻기 위한 질문이다.
 
법리는 법의 원리 또는 법의 이치를 말한다. 법리를 구성함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은 '경험칙과 논리법칙'이다.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을 말하는 상식은 일반적 견문뿐만 아니라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를 포함하는 개념으로서 경험칙과 논리법칙은 대부분 상식의 범주에 속한다.
 
얼마 전 뉴스기사를 통해 '중도금 무이자'라고 광고한 건설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입주민들이 패소판결을 받았다는 소식을 보고 흥미가 생겨 사실관계를 찾아보게 됐다.
 
언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범주 내에서 사실관계는 간략하게 이러하다.
 
모 건설사는 아파트 분양 모집 공고를 내면서 '계약조건 : 계약금 10%, 중도금 60%, 잔금 30% /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고 광고했는데, 입주과정에서 아파트 분양가 중 '일반운영 시설경비' 항목이 주변지역보다 크게 높은 점을 알게 된 입주민들은 해당 건설사로부터 "무이자 금융비용 210억원이 포함돼 그렇다"는 답을 들었다는 것이다.
 
법원은 건설사의 중도금 무이자 광고를 불법·거짓 광고라고 볼 수 없다며 건설사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광고에서 해당 내용은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는 단 4단어뿐"이라며 "이 문구에 중도금 이자가 분양대금에 반영되지 않는 '완전 무상'이라는 의미까지 담겨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재판부의 법리적 설명은 이러하다. "이동통신사들이 '무료통화·문자 요금제'라고 광고하지만, 고객들도 무료 통화에 대한 가격이 실제로 요금에 포함되지 않는 완전한 무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는 일상 거래에서 자주 사용되는 계약조건으로서 이런 거래에서 원가가 대금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적 경제관념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리적 설명은 상식에 부합하는 것일까. 의문이 든다. 일반인들은 단위 면적 당 분양가를 기준으로 분양대금이 결정되고, 중도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려서 지급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금융비용은 분양대금과 별도의 경제적 부담으로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논리적으로 분양대금이 먼저 결정돼야 중도금이 정해지게 되고, 중도금이 정해져야 그 이자를 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라는 것은 분양대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중도금을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리는데 들어가는 금융비용을 어떤 식으로든 수분양자에게 전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위 판결이 이슈화 되는 건 일반인의 상식에 비춰 이해가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법리와 상식의 간극이 커질수록 사법에 대한 신뢰회복은 점점 요원해진다.   
 
아무리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라고 하더라도 법원은 최후의 보루로써 정의가 살아있고, 상식이 건재하다는 것을 판결을 통해 입증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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