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준 청주대 교수

▲ 정창준 청주대 교수

[정창준 청주대 교수] 한국의 민주투사로서 오로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투지로써 오랜 투쟁을 끝내고 마침내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던, 전 김영삼 대통령은 분명 역사에 큰 획을 남기고 간 영원한 정치인으로 우리의 기억속에 남겨질 것이다. 그의 대통령으로서의 집권을 위한 3당 합당과 말기를 장식한 국가부도사태 등 몇 가지 흠결만 제외하면, 대다수 국민들의 기억속에는 매우 일찍 시작한 정치이력, 군사독재 치하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가열차고 지난했던 투쟁의 투사로서 고단한 민중들의 삶과 함께한 역사의 증인으로 남을 것이다.
 
결코 길지 않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기억할 때, 동시대를 겪어며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으레 신문의 정치면에는 그의 활동 일거수 일투족은 군사독재 정권하에서의 투쟁의 역사로 기록돼 왔다. 이른바 상도동계 정치인의 활동상이 연일 신문 지상을 장식하는데, 그의 발걸음과 발언 하나하나는 고단한 삶을 사는 국민들에게는 하나의 기약없는 희망의 끈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잊혀져가는 거물 정치인으로 정계은퇴 후 노쇠한 그의 일상이 가끔 전해져 오다가, 막상 닥쳐온 갑작스런 부음은 일순간 우리 대한민국 한 역사의 단편들을 불러올리고 되돌아보게 만든다.
 
필자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같이한 그의 정치이력은 민주투사로써, 사회인으로서 지나가는 여정에서 마침내 대통령이라는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 오르기까지 참으로 긴 시간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까지 여럿의 대통령이 함께 했지만 그와 함께 동시대를 지나는 기억의 편린은 역시 민주주의에 대한 꺼지지 않는 불굴의 투쟁의 역사로 남는데, 현재의 시점에서 새삼 두드러지게 비교되어 아쉽고 서운하게 다가온다.
 
과거는 지나가는 것이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그 과정에서 과거에 대한 모든 인식은 기억에 기초를 둔다. 회상을 통해 이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고, 어제를 오늘과 구별하며 경험과 과거를 확인한다. 우리가 현재라고 일컫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흔적을 남기며 과거가 된다. 그리고 그 과거는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현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며 되살아나서 지나간 흔적은 조명과 재현을 통해 다시 새로운 인식으로 수용 가능해 진다.
 
얼마전 일본의 아베 수상이 주한일본 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에 대한 철거를 원한 것은 과거가 재현되어 현재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하여 살아 숨쉬는 것을 두려워함이 그 이유일 것이다. 문자로 된 기록이든 재현하여 축조된 물리적인 것이든 우린 인간의 인식의 범위를 벗어나면 역사는 없는 것이 된다.
 
지난하고 고단한 투쟁 끝에 쟁취한 민주주의의 산증인인 고 김영삼 대통령이 단초를 마련한 귀중한 정신적 자산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보존해야 할 자랑스러운 문화적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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