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정란건양대교수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지 않았지만 경제 불황의 한파로 온 나라가 차갑게 얼어붙고 있다.
여기저기서 구조조정 소식이 들려오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있고, 자영업자들의 근심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오랜 불황에 시달려온 출판계에 작은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장기침체의 늪에서 그나마 취업을 위한 전공서적이나 자기계발 관련 서적들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발 경기 한파까지 몰아치자 소설책들이 이를 압도하고 베스트셀러의 앞 순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책 중에서도 어머니를 소재로 하거나 성장소설이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데, 우리가 위급한 상황이면 절로 터져나오는 소리가 어머니이며, 아름답고 순수했던 과거를 추억케 하는 것이 성장소설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위기감을 느끼거나 불안할 때 실리적인 어떤 것을 취하기보다 심리적으로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현실에서 벗어나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따듯한 감동이나 대리 만족을 얻기 위해서인 것이다. 현실도피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순수한 미적 쾌감을 통해 사회적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다면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한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문학의 사회적 효능을 운운하지 않더라도 문학은 사람들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고 미적인 쾌감을 안겨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근래에는 이러한 문학의 기능을 활용하여 사람의 영혼이나 심리를 치료하는 문학치료가 학문의 한 영역으로 편입되어 연구되고 있기도 하다. 독일의 문학치료 연구학자인 문첼(munzel)에 따르면 병상에서 읽는 책은 자신의 상황을 잊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생각을 유도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책읽기에 몰두하다 보면 육체적 고통이나 심리적 불안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도 이야기 장단에 도낏자루 썩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야기에 빠져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뜻이다. 그러나 불황의 시대에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문학의 도약은 베스트셀러 집계에 등장하는 소수의 책 외에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인지도 높은 저자의 책 외에는 거의 팔리지 않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각한 것이다.
전체 출판시장의 규모도 작년에 비해 약 20% 가까이 감소되었으며, 팔리지 않는 책에 대한 반품 기간도 짧아져 서점에 잠깐 얼굴만 비쳤다가 사라지는 책들도 많다고 한다.
이러한 출판 불황에 직접적인 원인은 우리나라 국민들의 형편없는 독서량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 가을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조사한 독서 통계에 따르면, 1년 동안 책을 한 권 이상 읽은 사람이 63.9%, 읽지 않은 사람이 36.1%라고 한다. 특히 한창 책을 많이 읽어야 할 10대 청소년 중 25.1%가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청소년들은 여가시간에 독서대신 인터넷이나 게임을 하든지 tv나 dvd 등을 시청한다고 했다. 북유럽 국가의 사람들이 길고 지루한 겨울밤을 이겨내기 위해 독서를 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 3개국은 진보된 정보화사회 시스템이 구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문 구독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겨울이 일찍 찾아오는 환경 때문에 발달한 이들의 독서문화가 신문 보급률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경제 한파에 한겨울 추위까지 몰려오면 사람들의 마음은 더욱 궁핍해지고 팍팍해질 것이다. 이러한 때 독서는 그 어떤 추위도 이겨낼 수 있는 슬기로운 방법이 될 것이다. 사람살이가 참으로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서점에 들러 마음을 여유롭고 따듯하게 해주는 책을 골라 읽어보는 것이 어떨까 한다.
개인적으로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치유할 수 있고, 우리의 문화와 지식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출판계를 살리는 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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