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현자 시인ㆍ충북시조시인협회 사무국장

달랑 남은 12월 달력이 힘없이 벽에 늘어뜨려져 있다. 윗부분의 사진에는 어느 산사 눈 덮인 일주문이 을씨년스럽게 바람에 떨고 있고, 12라는 월을 표시하는 큼직한 숫자 밑으로 서른 한 날이 똑 같은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다. 아마도 잘려나간 열 한 장의 달력 또한 이러했으리라. 하루하루가 똑 같은 시간으로 흘러 무자년 한 해도 이제 십 여 일만을 남겨둔 채 저물어가고 있다.
한 해 동안 유난히도 어렵고 어수선한 일이 많았던 탓인지, 아니면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로 전전긍긍한 탓인지, 오늘따라 덩그러니 걸려있는 마지막 한 장 달력이 안타까움으로 다가온다.
해마다 연초엔 한·두 가지쯤 계획을 세우곤 했었는데 올 초엔 어떤 계획을 세웠었나? 싶을 만큼 까마득한 걸 보니 꽤나 숨 가쁘게 살아왔지 싶다.
하루아침에 달라질 국가 경제가 아니라지만, 새 대통령, 새 정부를 맞으며 나름대로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다. 아마 대다수의 국민들 생각과 바람도 별반 다름이 없었으리라. 허긴, 예산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대통령이나 그 밖의 정부 관계자들 심정 또한 오죽하랴.
연일 밤잠 설쳐가며 머리를 맞대고 궁리한 끝에 내놓는 처방이번번이 약발도 없이 환부를 덧들이기나 하는 꼴이니….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도깨비 방망이라도 휘둘러 이 어려운 난국을 헤쳐 나가고 싶을 게다. 어느 시인은 '길 위에서'라는 시에서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지금 우리 모두는 길을 잃고 휘청대며 흔들려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밀어닥친 어려움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잘 떠나보내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풍요로워질 수도, 더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길을 잃고 나서야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은 시인처럼 우리 모두 정말 심도 있게 돌아봐야 할 때이다.
내게도 알게 모르게 습성처럼 굳어버린 어떠한 문제점은 없었는지?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할 일은 없는지?
우리 정부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는 무엇인지?
소통, 소통하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말 국민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는 정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만큼 암울한 현실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깨달을 일이다.
불과 10년 전, 우리는 국가부도의 엄청난 사태 앞에서도 아이들 돌·백일 반지까지 들고 나와 외환위기를 헤쳐 나온 저력이 있다.
넘어져본 사람만이 넘어지는 법을 알고, 또 일어서는 법도 안다.
더 이상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댈 게 아니라 새해엔 보다 나은 내일이 될 거라는 믿음으로 다시 한번 마음 다잡아 "매일 매일을 인생의 최초의 날이요, 최후의 날처럼 살라"고 했던 하우푸트만의 격언처럼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새해엔 반드시 새로운 태양이 뜨겁게 떠오를 것을 고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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