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혜 한국교원대 교수] 당신은 특별한 날이 아니었다면, 이틀 전 저녁 메뉴를 기억하는가? 애인이 여럿이었다면 두 번째 애인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이사를 여러 번 갔다면 두 번째 이사 간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는가? 지금 나이가 30이 넘었다면, 초등학교 때 교장선생님 이름을 기억하는가?

이 질문 중 두 개 이상을 답하지 못한다면 그건 여러분의 건망증 때문일 것이다. 건망증은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그 내용이 기억이 안 나는 경우를 말한다. 그래서 실컷 공부한 다음에 결국 기억이 안 나서 시험을 망친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건망증은 모든 사람들이 달가워하지 않지만, 건망증이 인류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가설이 있다.

건망증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컴퓨터와 로봇은 기억이 지워지면 기억이 존재했다는 것을 인식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기억이 지워져도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신기하게도 기억한다. 그것은 인간이 사실을 편집하여 기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그 사건의 의미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에는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이 나중에 그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증상은 부부 싸움 후에 가장 잘 나타난다. 싸움의 원인과 해석이 서로 매우 다른 경우가 많은데, 싸움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싸움에 대한 의미 해석은 기억의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것이다.

가끔 기억력이 좋아서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은 시험은 잘 볼지 모르지만 사회생활은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증상이 극단적인 경우를 우리는 자폐아로 구분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는 것이 무슨 문제일까? 가장 큰 문제로 꼽는 것은 창의성이 없다는 점이다. 의미의 편집 과정에서 우리는 사건을 재해석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창의적 사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뇌에 기억이 저장된 후에도 끊임없이 기억들은 편집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편집이 일어날 때 창의적인 사고가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인류가 진화하면서 발달시켜 온 창의성이 오늘날 학교 교육에서는 별로 쓸모가 없다. 우리는 기억의 편집을 요구하는 문제 보다는 사실을 그대로 기억하는 문제를 더 선호하기 때문이다. 뛰어난 과학자 중에는 건망증으로 고생한 사람들의 일화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인류에 기여할 매우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앞으로 학교에서 보는 시험이 기억의 편집을 통해 만들어진 창의적인 사고를 묻는 것으로 바뀐다면, 우리나라에도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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