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첫눈이 내렸다. 보이지 않는 희뿌연 한 공간 속에서 흰 눈꽃들이 하늘하늘 끝없이 내려온다. 첫눈내리는 날의 설렘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인지. 끝을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을 향해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는 어린아이처럼 하냥 바라본다.
 
언제쯤이었던가! 기억마저 아련하다.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초등학교에 입학 하던 날부터 내 인생의 도화지에 어설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철모르던 하루가 가고 그런 하루를 또 맞이하고 보내고, 날마다 그렇게 맞이하고 보냈던 수많은 일상들이 현재의 인생길이었다는 것을… 밤새 내린 눈으로 세상이 하얗다. 얇은 사 하얀 모시 결 같은 눈이 나풀거리며 세상 모든 것들을 하얗게 덮어 버렸다.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새 하얀 도화지처럼. 그 하루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우리는 연습도 예습도 없는 미지의 날들을 날마다 아슬아슬 걸어간다. 앞만 보고 가느라 뒤도 옆도 돌아 볼 여유가 없다. 약속된 달력도 어느새 마지막 한 장만을 남겨두고 있다. 채우지 못하고 그려내지 못한 시간 앞에서 아쉬움과 허탈감으로 또 하루를 보낸다.
 
한 해가 마무리 되는 이맘때면 세상을 하얗게 덮어주는 눈이 내려와 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하얀 눈으로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 듯, 단 한 번의 연습도 없이 서툰 몸짓으로 삐뚤빼뚤 그려 진 그림을 지우고 새 도화지위에 다시 그림을 그린다면 지금보다 더 멋진 그림이 나올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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