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순 한국커리어잡스 대표] 시작은 슬펐다.

가슴에 쌓인 응어리가 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소리를 배우러 가는 날, 휴대전화에 녹음된 선생님의 목소리를 듣다가 꺽꺽 울었다.

슬픈 마음으로 듣는 노래는 영락없이 슬펐다. 한이 서린 듯한 노랫가락을 읊조리며 가사를 음미했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가사와 곡조가 이해되자 내 마음을 그 안에 녹여냈다.

단지 고음을 내는 것만으로 소리를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옛시조 가사들이 마음에 닿으면서 노랫말에 집중했다.

지나간 바람은 춥지 않다고 한다.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들도 시간이 지나니 희미하게 잊히고 문득 떠오르기 전까지는 점점 깊이 가라앉는 듯했다.

시작한 일이니 여전히 한 달에 두어 번 선생님을 찾아가 가부좌를 하고 장구 소리에 맞춰 소리를 했다.

처음에는 아리랑을, 그다음에는 노랫가락을 가르쳐 주시더니 또 다른 곡을 추천하신다.

내 목적은 소리를 내어 스트레스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굳이 이런저런 새로운 노래를 배우느라 또 다른 스트레스를 경험하고 싶지 않아 더는 새로운 곡을 배우는 것을 사양했다.

벌써 6개월째 노랫가락만 반복하고 반복했다.

문인협회 세미나에 갔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흔하디흔한 말을 실감한다.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흥을 돋우기 위해 소리를 했다.

뒷자리에서 흥얼흥얼 시작해 보았는데 뜻밖에 반응이 좋아 박수갈채를 받으며 몇 곡을 더 불렀다.

처음엔 모깃소리만 하던 청이, 박수가 이어지자 제대로 꺾어가며 맘껏 부르고 나니 슬프게 시작했던 소리가 즐거움으로 변했다.

종일 가는 곳마다 흥얼흥얼 같이 따라 부르는 사람들과 어우러졌다.

지부장님이 천안문학 40주년 기념식에서 3부 사회도 보고 노래도 불러 달라는 청을 했다.

선생님과 함께 노래하며 수없이 지적받던 내 소리가 들을 만했다니 고마운 일이다.

아침 운동을 할 때마다 선생님 소리를 녹음해서 들었다. 천호지 한 바퀴 도는데 40여 분 걸리는 거리를 새벽 첫소리로 따라 불렀다.

외우기도 어려웠던 가사들이 연극을 보듯 머리에 새겨졌고 십 여곡 정도는 줄줄 외게 됐다.

가사를 까먹어 낭패를 보는 일이 없겠다 싶을 때 문인협회 행사를 진행했다.

나도 깜짝 놀랐다.

별로 부끄럼타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여흥의 자리에서 노랫가락은 전혀 슬프지 않았다.

'언제 민요는 배웠느냐'는 칭찬이 깊은 속 응어리를 풀어냈다.

슬픈 생각으로 마주하면 슬프고, 즐거운 생각으로 대하면 즐거운 게 노래다.

같은 노래를 다른 감정으로 부를 수 있다면, 내 해석에 따라 슬픔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하여 고함치고 싶었던 억울함을 나를 단련시키고 인내하게 하는 훈련쯤으로 받아들이고 즐기고자 한다.

그래야 '위기가 곧 기회'라는 해석으로 긍정이 내 뇌리에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나를 힘들게 했던 모든 이들에게 겸손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로부터 내가 다시 새로워졌으므로 그건 분명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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