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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의 이익에 얽매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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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2.08  20:2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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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 홍익불교대학 철학교수] 장자(莊子)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사나이가 수많은 원숭이를 키우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식사의 양을 정해 놓으려고 "이제부터 칠엽수(七葉樹)의 열매를 아침에 3개, 저녁에는 4개씩 주려고 하는데 너희들 생각은 어떤가?"하고 물었다. 그러자 원숭이들은 '키이, 키이'하고 화를 냈다. 사나이는 한참을 생각하다가 "알았다. 그러면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씩이면 어떤가?"하고 말을 고치자 원숭이들은 '캬아, 캬아'하고 손을 흔들면서 좋아했다.

너무 눈 앞의 이익만을 탐내는 자의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교훈이다. 뉴욕의 브룩클린에 조그마한 가방 상점이 있었다. 그 가게에는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 밑에서 일하는 소년이 있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자기의 낡은 허리띠를 버리고 진열장에서 새것을 꺼내 허리에 맸다. 그러고 나서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장부에 기록한 다음 금고에다 그 돈을 넣는 것이었다. 자기의 상품을 자기가 쓰는데 대금을 지불하는 것을 보고 있던 소년에게는 이 사실이 놀랍고 기이하게 느껴졌다. 이러한 아들의 의문에 대해 아버지는 상인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세를 가르친다.

"상점이 번영하지 않고서는 너 자신도 성장할 수가 없다." 아버지로부터 이 말을 듣고 있던 소년이 유진 화카프였다. 2차 대전이 끝난 뒤 뉴욕 맨해튼의 움막집에서 불과 4천 달러의 자본금으로 '디스카운트 하우스'의 경영에 손을 댄 이래 미국 북동부에 30개 점포의 체인 경영에 성공한 미국 제일의 '디스카운트 디파트먼트 스토어' 체인의 창업주가 바로 그 소년이었다.

전쟁에서 4년 만에 돌아온 그는 구태의연하게 40%의 마진을 취하고 하루 매출액 100달러도 되지 못 하는 아버지의 방법에 불만이 컸다. 그리고는 매출액을 비약적으로 늘이기 위해서는 마진의 폭을 대폭 줄이는 도리 밖에 방법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1948년 유진은 드디어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 우선 조그마한 2층집을 빌려 가방의 디스카운트 상점을 열고 '낮은 마진, 높은 회전률'이라는 자기 나름대로의 목표를 밀고 나갔던 것이다.

당장은 손해 보는 것 같았지만 그의 방법은 적중했다. 수많은 손님이 몰려들었다. 쌌기 때문이다. 화카프는 눈앞의 이익에 얽매이지 않았다. 아무리 손님이 몰려들어도 높은 마진을 취하려 하지 않았다. 믿을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면 절대로 팔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 파는 물건은 '싸고 믿을 수 있는 상품'으로 인식돼 갔던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원가 이하의 판매를 서슴지 않았고 그러면서 생기는 이익으로 체인망 확대에 전력을 쏟아 오늘날과 같은 거대한 체인망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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