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북도립대 교수.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 평소 존경하는 분께서 페이스 북에 올리시는 글 중 '오늘도 걷는다마는'이라는 글이 있다. 시리즈로 쓰시는 글이신데 노년에 인생을 관조하시는 삶과 멋이 깔끔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이 분은 이리도 멋지게 남은여생을 즐기고 계신데 비해,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오늘도 싸운다마는'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이유인 즉 오늘 주일인데 예배드리러 안 가서 그렇다. 1년 56주 중에 교회에 안 늦게 가는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남들 열심히 기도하고 있는 중간에 문 삐쭉 열고 들어간다는 것 자체가 예배 방해 행위이다.

가면만 안 썼을 뿐 이것은 명백히 목사님의 교회 예배 집행을 적극적으로 방해하는 악질 소행이다.

하기사 내 자동차 기름의 절반은 시동 켜 놓고 집사람 기다리는데 들어가는 공회전에 소모된다.

집사람의 인생철학과 삶의 신조가 교회에 조금 늦게 다녀야 한다는데 있다.

수십년을 함께 살며 아무리 바꾸고자 노력해도 절대 안 바꾸며, 또 이를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산다.

부부싸움의 90%가 이 문제로 다투는 데도 불구하고 절대 안 바꾼다.

만일 교회에 일찍 다니는 날이 온다면 그 날은 아마 예수님께서 세상에 재림하시는 날일 것 같다.

아, 정말 누구 집 자식인 지 존경스럽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내가 교회 안 다니는 것이 상책일 것이라는 것이다.

또 현실적으로는 헌금 안 들어가니 돈 아껴서 좋다.

다만 천당 못 갈까 걱정이 되긴 하는데 만일 내가 죽어서 천당에 못 간다면 이는 오로지 내 집사람 탓이기 때문에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예외로 인정해 주실 것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마침 어느 분이 밴드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려놓았다. 내용이 좋다.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사랑하는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차를 모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태워주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집의 크기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어떤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남에게 무엇을 베푸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친구를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우리를 친구로 생각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우리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낸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중요한 것은 우리가 좋은 동네에서 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이웃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는 것입니다. 정녕 사랑과 배려와 나눔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아름답고 성공한 삶일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밴드에 이리 주옥같은 글이 올라 와 있어도 내 마음이 안 풀린다는 것이다.

이제 한 해가 저문다.

새해엔 제발 집사람이 교회 일찍 다녔으면 좋겠다.

그래서 안 싸우고 살았으면 한다. 더 나아가 좌와 우, 여야도 안 싸우면 좋겠다. '해피 송구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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