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찬바람이 우르르 등성이를 넘고 있다. 하늘도 무채색으로 내려앉는다.

야트막한 동산, 늘상 대하던 문학관 앞 공원은 옷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다. 한 해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다사다난'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절로 떠오르는 12월이 종종걸음을 치고 있다.

찬 기운 덜 가신 대지를 뚫고 여린 싹을 내밀 무렵, 수필이라는 이름으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한 여인들과의 만남은 내게 특별했다. 수필교실 종강식을 마치며 그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를 새긴 등불을 밝히고 잠시 휴지기에 들었다.

종강은 했어도 그 몇 개월 동안 길이 들었는지 어느새 문학관으로 들어서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수요일이면 소녀처럼 재잘대던 소리가 오늘은 들리지 않고 그들이 밝혀 놓은 한지등의 불빛이 대신한다. 한 구절 한 구절 새겨놓은 내면의 울림에 귀를 기울여 본다. 잠재돼 있던 각양각색의 생각들이 '따로 또 같이' 조화롭게 빛나고 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사무실로 들어섰다.

꽃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여인이 정성들여 덕어 온 꽃차를 꺼내, 두어 송이 컵에 담았다. 배들배들 말라있던 꽃송이에 뜨거운 물을 부으니 꽃잎이 금방 해사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돼지감자 꽃이다.

돼지감자도 감자 일진데 꽃은 감자꽃을 닮은 구석이 한군데도 없다. 잎이나 줄기도 어디 하나 감자를 연상 지을 만한 곳이 없는데 엉뚱하게 감자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말 그대로 뚱딴지같다. 올해 처음 돼지감자 꽃차를 대하면서 돼지감자가 뚱딴지라는 것을 알았다.

연유인즉 꽃과 잎새에 비해 땅 속에 있는 덩이줄기가 못생긴 감자 모양으로 들어 앉아 있는 것이 엉뚱해 보인다해 그리 불린다는 설이 있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뚱딴지는 애자가 전부였다. 애자는 전봇대 위에 매단 절연체로, 전기가 통하지 않게 하는 도구를 말한다. 하여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거나 이치에 맞지 않게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을 뚱딴지같다고 한다.

컵 속에 작은 해바라기가 핀 듯 뚱딴지 꽃이 동동 떠서 노랗게 꽃물을 우려내고 있다. 제 속을 열고 우려낸 차향이 목 줄기를 타고 폐부로 스며든다. 마음이 따뜻해온다. 한여름 하나하나 꽃송이를 따서 정성껏 손질해 말린 그녀의 마음이 와 닿는다.

그동안 함께 했던 이들이 찻잔에 어린다.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 두었던 말, 까마득히 잊고 있던 추억들을 끄집어내어 한편의 글로 빚어내며 해맑은 미소를 짓던 이들이 떠오른다.

마음을 누르던 답답함을 글로 풀어내면서 활력과 작은 설렘을 갖게 됐다는 이는 자기 내면과의 소통을 알게 된 것이다.

뚱딴지 꽃도 정을 주고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노란 제 속을 풀어내며 사람들에게 몸에 좋은 차가 된다. 하물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야 말로 꽃 중의 꽃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꽃을 정성스럽게 우리고 또 우려낸다면 만병을 치유할 수 있는 효능을 지닌 가장 향기로운 꽃차가 되지 않을까 싶다.

날씨가 점점 차가워진다. 향기로운 꽃차를 마시며, 뚱딴지의 불통을 떨치고, 나와 또 타인과의 진정 아름다운 소통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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