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찬순 시인.

[임찬순 시인·희곡작가] 연분홍 진달래꽃이 활활 산자락을 불태우던 봄날이었다.

스승은 먼 한양으로 출타하며 제자들에게 단단히 타일렀다.

"절대로 말썽을 피우지 말고 부지런히 글 읽고 내가 돌아오면 괄목할만한 성적을 보이거라." 하고 많은 분량의 숙제를 내줬다.

제자들은 깊이 허리 숙이며 굳게 맹세했다.

그러나 한달 후 스승이 돌아와 보니 화양동은 이웃 마을 사람들이 떼로 몰려와, 지체 높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거친 시위를 벌려 아수라장이 됐다.
 
놀란 스승은 침착하게 사태부터 파악했다. 마을 촌장이 나서서 성난 음성으로 말했다.

"어르신 제자들이 우리 마을 소를 훔쳐다가 잡아먹었습니다."

"뭣이라구?" 스승은 기절 할 듯이 놀랐다. 충분한 변상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람들을 가까스로 돌려보내고서 제자들에게 비상을 걸었다.

어느 때보다 엄격하게 숙제를 하나하나 점검했다. 통과한 사람은 수제자 단 한사람뿐이었다. 스승은 격분했다.

"첫째 네놈들은 글 읽는 본분을 다하지 못한 잘못을 저질렀고, 둘째 스승에게 한 맹세를 무참하게 깨뜨렸으며, 셋째 농부의 전 재산 소를 훔친 중죄를 범했다. 나는 그처럼 싸가지 없는 네놈들을 가르칠 수 없다. 당장 나가라" 추같은 명령이었다.

쫓겨 가는 등 뒤에 대고 다시 소리쳤다. "소값은 반드시 변상하라"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각기 돈을 마련하고 크고 틈실한 소를 사서 그 마을을 찾았다.

화양동으로 몰려간 마을 사람들이 다 모인 가운데서 소고삐를 주인에게 넘겨주고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하고 백배 사죄했다. 

마을 사람들은 크고 틈실한 소를 보자 금방 마음이 풀려서 하나하나 그들을 일으켰다.

그들은 그 집에서 냉수 한 그릇씩 마시고 곧장 화양동으로 갔다.

스승은 경서를 읽고 있었다.

제자들은 대뜸 섬돌 아래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스승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제자들은 무릎을 꿇었으나 스승은 입을 떼지 않았다.

또 해가 지고 있었다.

스승은 마침내 수제자에게 뚜벅 말했다.

"왜 네놈은 이번 일에 가담하지 않았느냐?"

"저는 비겁한 겁쟁이로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배포가 없는 놈이라 조롱 받는것이 무척 싫고 두려웠으나 저희는 너무나 가난하고 가난해서 소 값을 변상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변상하게 될 것을 미리 알았단 말이냐 그때 넌 뭘 했느냐"

"그것은 큰 죄인데 어찌 그 결과를 짐작하지 못했겠습니까. 저는 혼자 산위에 올라 밤새도록 짐승처럼 슬피 울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 외로움과 어머니 혼자 종일 땡볕에서 나가 일해도 굶주리는 가족들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마을에 가서 무릎 꿇을 때 스승님께 잘못을 빌 때는 가장 앞장섰습니다."

"저놈 말이 아름다워 너희들은 용서하니 백배나 더 학문에 힘쓰고 먼저 참다운 사람이 되거라."

그들은 감격해 스승과 수제자를 한껏 존경해 정말로 백배나 더 학문에 정진해 거의 모두 과거에 급제하고 계속 높은 벼슬길에 올랐다.

(이것은 우암 송시열에 관한 야사를 임의로 극화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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