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해마다 연 초에 우리는 반복적이며 습관적으로 '올 한해는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자기 다짐을 가지고 새로운 희망을 꿈꾼다. 그렇지만 어떤 이는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고자 꾸준히 노력을 하는 반면, 다른 이는 자신의 의지를 이기지 못해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마도 이것은 자기 몫에 걸맞지 않은 명분을 내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크게 두 갈래의 조직이 있다고 본다. 그 첫 번째는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님과의 상대적 관계 속에 자연스럽게 얽히게 되는 경우인데, 이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조직이면서 인륜이다. 반면에 우리가 성장하고 살아가면서 부득이하게 인위적인 조직에 들어가야 하는 사실이 두 번째 경우이다. 예를 들어, 배움의 과정에서 선생과 학생의 관계부터 삶의 현장에 뛰어들어야 한다는 자체까지가 인위적인 조직이다.

이러한 조직 내에는 각각의 이름이 주어지고 그 이름에 걸 맞는 '역할'이나 '몫'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이것을 '명분'이라고 말한다. 살아가면서 이 두 갈래의 조직 속에는 이름과 그 이름에 상응하는 역할이나 몫이 분명하게 나눠져 있음을 뇌리에 새기자. 가정 내에서 엄마라는 역할이 가정 밖의 조직에서는 외판원이라는 몫을 가질 수 있는 이원적인 성향들이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제 역할이나 제 몫을 다한다는 것은 이원적인 역할이나 몫을 다했을 때 떳떳하고 당당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일 것이다. 나 자신은 물론 우리 주변을 보면 역할이나 몫에 대한 면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부족한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이나 제 몫을 아예 모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자면, 윤리라는 말을 자주 쓰면서 그 말이 갖는 깊은 의미를 전혀 이해 못하는 것 같다. 모든 윤리란 사람과 사람의 개체에 맞는 역할이나 몫과 같은 구실이 있어야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자연적이거나 인위적인 조직 내에서 거기에 맞는 이름은 물론 역할이나 몫이 주어짐과 동시에 수행을 함으로써 서로가 존중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의 존재 의미나 사회적인 흐름에 대한 실현이 뒤 따를 때 역할이나 몫에 대한 이름의 실체가 살아나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물의 실체는 이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에 걸 맞는 내용, 말하자면, 그 실현에 있는 것이다.

이름은 자체가 언제나 허상일 뿐이고 실상은 걸 맞는 그 이름의 내면에 숨어있는 의미 내지는 그 실현이 바로 실상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우리는 이름이라는 허상에 가려진 채 실상을 망각하는 성향이 농후하다. 이러한 까닭에 자신의 역할을 착각하고 설맞지 않은 허상만을 추구함으로써 의지가 약해지고 실망감으로 괴로워하는 것이다. 따라서 올 해는 자신의 역할과 몫에 걸 맞는 구실을 찾음으로써 새해 벽두에 다짐한 모든 일들을 이뤄지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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