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날씨가 쌀쌀하고 아침 기온이 영하의 날씨이지만 예년보다는 포근하다. 매주 월요일 친구들과 함께하는 산행을 지난주에는 낙가산을 다녀왔다. 것대산 쪽은 여러 번 다녀봐서 그날은 보살사 방면으로 가는 일행과 합류했다.
 
바람도 잔잔하고 햇살도 좋아 봄날 같았지만 그래도 손이 시리고 땀도 나지 않는 걸 보니 겨울은 겨울인가 보다.
 
하기야 절기로는 소한과 대한 사이이니 연중 가장 추울 때다. 새해 들어 두 번째 산행이니 더욱 상쾌하고 새롭게 여겨진다.
 
하늘은 파랗고 무엇보다 공기가 상쾌해 나도 모르게 뭉게구름을 타고 두둥실 날아도 본다.
 
우리 일행이 하산해 점심식사를 하며 하는 건배사가 생각할수록 마음에 든다. '산행'에서 한 자씩 따서 "산에 오면 행복하다"이다. '행복은 무엇일까?'하는 화두(話頭)로 몰입해 봤다.
 
모든 일이 생각하기 나름이라 여겨진다. 비관주의자는 비가 오면 땅이 질척거리고 불편하다고 하고, 낙관주의자는 초목이 잘 자라고 먼지가 가라앉는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오늘이 더 낫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다고 하고, 비관주의자는 어제가 더 나았다고 말한다.
 
낙관주의자는 벌을 보고 꿀을 모으고 열매를 맺게 한다 하고, 비관주의자는 쏘는 곤충이라 싫다고 하고….'지각된 한계'라는 말도 있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미리 정해놓고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정 짓는다는 뜻이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신만의 작은 세계에 갇혀 더 큰 진실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과, 주어진 작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은 누가 더 행복할까? "세상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까닭에 실수도 전혀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괴테는 말했다. 실수를 전혀 하지 않으니까 얼핏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이 말은 놀고먹는 백수나 거짓된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탓하는 말이다.
 
미국의 영화배우이자 감독인 우디 앨런의 말처럼 "한 번도 실패하지 않는다는 건 새로운 일을 전혀 시도하고 있지 않다는 신호"일 것이다.
 
지혜로운 삶이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여러 관점이 있겠지만 정직하고 긍정적이고 당당한 사람도 이 범주에 속할 것 같다. 스스로에게 당당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그 대신 적절하게 배려한다.
 
가치관이 뚜렷하고 자기 일에 충실한 사람들은 소신껏 행동하면서도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순수한 포용력도 갖추고 있다.
 
한마디로 인간미가 풍부하다. 잘 웃고, 쉽게 감동하고, 슬픈 드라마를 보다가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어떤 면에서 보면 천진난만한 어린이 같다. 때로는 필자 이야기 같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보다 더 행복할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질투심에 빠지곤 한다.
 
지나치게 비교하고 질투를 하면 그 상대가 싫어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적이 돼 자기를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만들 우려도 있다. 과연 행복을 누리는 지혜로운 삶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