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춥다. 모처럼 대한(大寒)이 이름값을 톡톡히 한다. 겨울의 마지막 절기를 야물게 매듭짓고 새봄을 맞겠다는 결연한 의지인가? 2016년도 달력을 내걸고 새해를 맞은 지 20일이 지났지만 절기상은 아직 전년도 끄트머리인 셈이다. 1년 365일 달리기 출발선상에서 워밍업 할 시간을 덤으로 얻은 듯 여유가 느껴진다. 마침 이 무렵은 지상의 모든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 공백의 기간이라 하지 않는가. 세시풍속에 의하면 '대한' 지나 5일째부터 입춘 3일전까지 일주일가량은 신구세관(新舊歲官)들이 지상에서 맡았던 임무를 마치고 다시 새 임무를 부여받기 위해 모두 천상으로 올라가 있는 기간이라 한다.

사람들도 이때 봄맞이 준비를 한다. 그간 마음 좋은 아낙 같던 기온이 '대한'앞에서 갑자기 곤두박질을 친다. 막바지 겨울의 추위 땜을 하는 거다. 기상청은 한파의 원인을 '북극의 소용돌이' 때문이라 했다. 북극의 소용돌이란 북극에 머물던 차가운 기류가 극지방의 온도 상승으로 인해 그곳에서 벗어나 남하하면서 생기게 된 이상기류를 말한다. 지구온난화가 몰고 온 이상기류는 야누스의 얼굴처럼 극단적인 양면성을 가지고 현실을 어리둥절하게 한다. 얼마 전까지 겨울이 겨울답지 않고 포근하다고 우려를 낳게 하더니, 이제 그 온난화가 강한 한파를 몰고 와 세상을 꽁꽁 얼어붙게 하고 있다. 혼돈 속에 자꾸 마음이 위축 된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사계절과 삼한사온의 구분이 뚜렷했다.

그러던 것이 어느 때부터인가 계절의 경계가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자연 뿐 아니라 사람 사는 이치와 삶의 질서 또한 무너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 보기가 갈수록 겁이 난다. 정치, 경제, 사회면에서 매일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한 귀퉁이씩 꿰차고 앉아 우리를 경악케 한다. 초등학교 아들을 살해하고 그 사체를 훼손해 냉동 보관한 비정한 아버지의 모습은 차마 인간이라 할 수 없는 절망의 끝을 보여주고 있다. 정치권의 싸움판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얼마 남지 않은 4·13총선을 앞두고 치열하다 못해 치졸한 공방이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여야는 물론, 야당도 그들끼리 갈라져 서로 머리채를 휘잡는다. 여당과 청와대간 보이지 않는 갈등은 또 어떻고. 그 잘난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올바르게 뜻을 펴지 못하고 저리 진흙탕 바닥에서 난장을 치고 있는지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 마당에 대통령은 왜 또 거리로 뛰쳐나와 한술을 보태고 있는지. 말초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일은 이제 그만하고 진정한 소통을 위해 서로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고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임무 교대를 위해 천상으로 올라간 신들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기까지의  기간 동안 우리 인간들도 좀 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임무에 대해 냉철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대한(大寒) 끝에 양춘(陽春)이 있다 했던가?' 긴 겨울 혹독한 추위 다음에는 반드시 따뜻한 봄이 온다는 이치는 불변의 진리다. 살아있는 진리가 있어 한 가닥 온기가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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