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나이 든 여자에게 필요한 네 가지 중에 하나가 딸이란다. 필자는 애초부터 필요의 한 가지를 포기했으나 세월이 갈수록 아쉽다.
 
연이어 아들만 둘을 낳은 후 딸 하나를 더 낳아 기르고 싶었다. 그러나 셋째 아이를 낳는 출산비용부터는 의료보험의 혜택조차 주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미련 한 점 없이 단산했다. 80년대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 90년대의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대한가족계획협회의 표어도 일조했다.
 
나라의 정책을 믿고 충실히 따라야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던 국민의 한 사람이 겪었던 30년 전 산아제한정책 시행하던 때의 일이다. 1960년대부터 시작된 산아제한 정책이 1994년 폐지됐다.
 
그러더니 2000년대부터는 '한 자녀보다는 둘, 둘보단 셋이 행복합니다'라고 국민을 달래는 출산장려정책이 펼쳐졌다.
 
나라의 인구정책이 불과 40여 년 만에 손바닥을 뒤집듯 한 것이다. 산아제한정책을 잘 따랐던 모범 국민이었던 세대가 조부모가 되어 겪는 사연이 심심치 않게 매스컴에 대두 되고 있다. 맞벌이 자녀를 위해 황혼 육아를 떠맡는다는 '할빠', '할마'라는 신조어를 얻은 사람들이다. 평생을 가족을 위해 살아왔는데 육아는 사실 어려운 일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를 비롯해 아기를 안고 업는 것은 척추와 관절에 무리를 줘어 건강을 위협한다.
 
손주 돌봄으로 시간을 보내야 하니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무리수도 있다.
 
한편 언제 조부모가 손주의 양육에서 제외된 적이 있나 의구심이 들었다.
 
특히 대가족제도 아래에서는 손주의 재롱으로 노후를 보내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고 갱년기 여성에게는 흔히 찾아오는 우울증 치료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자발적으로 육아에 동참해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지고 행복하게 가정을 엮는 매개체가 된 긍정적 경우가 아니다. 자녀가 외벌이만으로는 가정의 경제를 원만하게 꾸리지 못해 맞벌이해야 하고 부모는 원치 않는 육아를 떠넘겨 받았기 때문이다.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것을 양육노동이라 하고 양육시간과 시간당 급여를 따지며 노인의 건강을 해치고 노후설계를 방해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우성이다. 인류가 존속되기 위해서 누대를 거치며 지금에 이르렀고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있어 내가 있고 나의 자녀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노동이고 시급을 따져야 할 일인지 한편 서글프나 삶이 돈과 연관되니 부모 자식 사이도 수고에 대한 돈 계산을 분명히 해야만 한다고 목소리가 높다.
 
나라는 수시로 정책을 쏟아낸다. 새해가 되면서 바뀌거나 사라지거나 새로워진 정책이 몇 개던가. 성공한 정책은 몇 개나 될까. 특히 쉽게 회복이 안 되는 잘못된 인구정책의 해결을 위해 다시 내놓는 정책의 실효성은 얼마나 될까. 육아기 근로시간의 단축, 남성 휴직제의 확대를 하겠다는 등의 정책이 마구 쏟아진다.
 
대선이 불과 3개월도 안 남았다. 국공립 보육기관의 확충 등 이미 내놓은 정부 공약도 제대로 지키지도 않으면서 자꾸만 새로운 정책이라는 것을 내놓으니 외로움이 아닌 다른 목적의 양치기 소년이 등장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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