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 김진웅 수필가.

[김진웅 수필가] 며칠 있으면 입춘이지만 요즈음 날씨가 대단히 추웠다.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에 전국이 꽁꽁 얼어붙었다.

제주도에는 며칠간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혀 관광객들이 큰 고생을 하다가 뒤늦게 겨우 풀렸다.
 

폭설과 한파 피해가 눈덩이처럼 컸다는 보도에 안타깝기 그지없다.

날씨는 춥지만 한낮에는 덜 춥겠다는 생각에 두꺼운 옷차림으로 산책을 했다.

운동하는 사람으로 북적이던 명암저수지 가는 길도 한산했다.

한참 걸으니 귀가 시려 털모자로 귀를 덮었다. 따뜻한 장갑을 끼었어도 손이 무척 시려 주머니에 넣고 걸었다.

미끄러운 길에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걸으면 좋지 않지만….

한낮에도 영하 10도쯤 되는 동장군의 기세가 대단하다.

걷다 보니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김영권씨의 명상에세이집인 '삶에게 묻지 말고 삶의 물음에 답하라'를 읽은 생각이 나고 체험으로 느끼니 공감이 더욱 들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라는 책을 쓴 김영길 한의사의 이야기다.

그는 강원도 오지인 방태산에 한의원을 내고, 거기서 산을 타고 약초를 캐고 냉수욕을 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알음알음 찾아오는 불치병 환자들을 돌보는데, 그 치료라는 것이 걷게 하는 것이었다.

다리가 부러진 골절환자가 아니라면. 걸어가든 기어가든 매일 아침 해발 1000m에 있는 약수터까지 올라가서 약수를 마시고 오게 했다.

걷기는 만병을 다스린다는 그의 처방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회생시킨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니 우리도 많이 걸어야 하겠다.

특히 감명 깊었던 것은 걷는 것은 몸의 병만 고치는 것이 아니고, 세속에 찌든 습성과 욕망으로 가득 찬 마음의 병을 다스리지 않고는 온전히 몸의 병을 고칠 수 없다.

걷는 것은 몸을 먼저 닦고 마음을 닦는 자기수양의 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온몸역기내리기'라고 이름표를 달고 있는 운동기구 옆으로 갔다.

며칠 전에 갔을 때, 그 쇠붙이 의자에 앉으니 차가웠기에 그만둘까하다가 조금이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런데 상상도 못한 모습을 봤다.

누가 쇠판 위에 스티로폼을 얹어놓고 글씨까지 써놓고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삐뚤삐뚤한 글씨로 '뜻지 마시유'라고 쓴 것으로 보아 어느 분이 써놓고 조심스레 붙여놓았나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앉아보니 푹신하고 엉덩이가 따뜻해졌다.

나도 모르게 '아이고~이것 참'하며 너털웃음을 웃었다.

아마 그분도 이렇게 웃었을 게다.

작은 일이지만 그의 푸근하고 여유로운 마음과 다른 사람까지 배려하는 따뜻한 정이 내 엉덩이로 해서 온몸에 퍼지는 것을 느끼며 마냥 행복했다.

만약에 스티로폼이 아니고 껌이나 오물이 묻어있었다면 얼마나 불쾌할까!

그날은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걸어야 한다는 것과 다른 사람을 돕고 배려하려면 많은 돈이 들고 어려운 것도 있지만, 이처럼 쉬우면서도 보람 있는 방법도 있으니, 덕행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던 산책길이었다.

동의보감에서도 약보다는 식보요, 식보보다는 행보라고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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