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구 극동대 교수] 얼마 전 세계는 피케티에 열광했다.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의 자본'을 통해 "돈이 돈을 버는 속도(자본수익률)가 사람이 돈을 버는 속도(경제성장률)보다 빠르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이자, 임대수익, 배당금 등에서 생겨나는 자본소득을 따라갈 수 없다는 얘기다. 그는 이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영국 등 20여개 국가를 놓고 1800년대 초부터 2010년 전후까지 300여 년에 걸친 방대한 자료를 분석했다.
 
그리고는 오늘날의 자본주의가 세습자본주의화 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이를 막기 위해 세계 0.01% 초고소득층에 증세와 '글로벌 부유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워낙 파격적인 주장이다 보니 석학들 사이에서 찬반논쟁이 뜨거웠다. 피케티는 이 뜨거운 논란에 대해 "내 책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지금의 불평등한 현실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미국에서 샌더스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힐러리가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될 것으로 점쳐지는 상황에서 혜성처럼 나타난 버니 샌더스. 그가 힐러리 대세론을 위협하고 있다. 샌더스는 '99%를 위한 대변인'을 자처하면서 "1%의 부자에게 모든 부가 집중되고 99%가 고통받는 이 세상을 바꾸자"고 주장한다.
 
공약 역시 거대은행 해체, 최저임금 인상, 대학 등록금 무료 등 대단히 진보적이다.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그의 공격은 기득권에 던진 경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힐러리를 지지하고,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이 그의 공약을 평가절하 하는 등 열악한 언론환경에서도 샌더스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는다.
 
피케티, 샌더스의 돌풍은 갈수록 불평등이 심화되는 미국의 현실과 맞물린다. 미국의 소득 불평등 정도는 위험수위를 넘고 있다.
 
소득 상위 1%가 총소득의 23.83%를 차지하고, 더 심각한 것은 이 비중이 1979년을 최저점으로 지난 35년간 지속해서 상승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레이거노믹스)으로부터 드리워진 그늘이다. 우리 한국의 현실은 어떠한가? 10억원 이상 자산을 보유한 계층은 전체 인구의 4.2%에 불과하다.
 
소득 상위 10%가 전체 자산의 43.2%를 차지하고, 상위 30%가 보유하고 있는 자산비중은 73.5%에 이른다. 지니계수는 0.347로 선진 30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높다. 이렇다보니 국민 84%가 한국사회의 빈부격차 갈등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은 하위층의 소득을 쥐어짜는 데서 불평등의 원인을 찾고 있다.
 
즉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고, 복지혜택을 축소하고,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국가의 자원을 비생산적인 금융 분야의 부당이익 취득에 쏟아 붓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피케티와 샌더스의 등장에 세상은 열광한다.
 
미국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한국사회에 던져진 외침이기도 하다. 피케티의 파격적인 주장보다, 샌더스의 과격한 공약보다, 불평등한 한국사회의 현실이 더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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