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차창(車窓) 너머로 내리는 눈송이를 바라보며 많은 상념에 잠겼다.

일제 말기 어린 형제와 사랑하는 아내를 뒤로 한 채 일본군에 징병돼 망국지한(亡國之恨)을 품은 채 경부선 열차에 오르시던 아버님, 어린 형제의 손을 잡고 다시 만날 기약 없는 남편을 떠나보내시던 어머님의 모습이 떠올랐다.

50년 전 어머님께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논산훈련소에 입대하던 아들의 무운을 빌며 군용열차가 고향의 보천역을 지날 때 손을 흔들어 주시던 모습이 떠올랐다. 건국 훈 아버님께서 군복무를 하시는 동안 어머님께서는 어린 자식들과 가정을 꾸려 가시느라 어려운 세월을 보내셨다.

900여회에 걸친 외침을 받아온 우리, 아버님께서 일본군으로 끌려가시던 군용열차,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오시던 경부선, 이 시련의 역사와 함께 어머님께서는 남편을 현해탄을 건너보내시며 아픔을 겪으시고, 아들을 거쳐 손자까지 3대에 걸쳐 국군으로 보내셨다.

서경과 춘추좌씨전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고 했다. "미래에 대비하면 어떤 환란을 당해도 걱정이 없다"는 말이다.

이이 율곡 선생의 10만 양병설을 따랐더라면 두 차례의 왜란의 참화를 막을 수 있었을 텐테. 국제 사회에서 정의는 힘을 수반할 때 정의로서 의미가 있다.

남북분단, 이산가족의 아픔은 누구 탓이란 말인가.

시는 이 같은 역사의 아픔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국력 배양에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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