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태 건양대 교수] 필자의 어릴 적 설맞이 모습을 돌이켜 보면 기대감에 부풀어 마음이 무척 설레었고 기분은 한층 들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대부분의 가정들이 물질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기 때문에 명절을 빌미삼아 새 옷을 얻어 입을 수 있었고 세뱃돈도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마음을 설레게 한 것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고향에 가면 우리를 반겨주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그곳에 계셨고 보고 싶었던 친척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삶에 이렇듯 푸근함과 정겨움을 느끼게 만드는 고향이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을까? 흔히들 우리가 태어난 곳을 고향이라고 말하거나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개념으로서의 고향이란 대단히 어색한 말일 수가 있다.

요즘 의료시설의 발전과 더불어 대부분의 아이들이 산부인과 병원에서 태어나기 때문에 병원이 바로 고향이 될 것이며, 실향민들의 경우에 명절이 되면 고향이 있는 방향으로 차례를 지내는 모습만 봐도 타향은 절대로 고향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고향이 어디라고 말해야 하나…. 우리 모두는 고향이 있다. 그래서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생기면 우리는 분명하게도 고향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이 고향은 나의 고향이기에 앞서 우리 조상들의 고향이다. 조상들이 피땀 흘려 갈구고 닦아 놓은 애틋한 삶의 터전이며 그들이 살았던 곳이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생활의 방편에 따라 수시로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한다. 잦은 이동 때문에 심신이 피곤하고 지쳤을 때 그리고 무엇인가를 사무치도록 동경하고 싶을 때 고향은 더욱 그리워질 수도 있는 곳이다.

아울러 고향은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의 상공문화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과 안식을 내어주는 푸근한 시골을 연상하게 하는 곳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우리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이 지났다. 도시의 인구 절반 가까이 시골로 빠져나갔다. 아마도 이 이동인구의 과반수가 태어난 고향은 시골이 아니라 산부인과병원 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설빔을 차려입고 양손에 선물을 들고 시골로 향하는 이유는 그곳엔 그들의 영원한 뿌리인 조상들이 계시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고향이라는 말은 태어난 장소나 정들면 고향이 되는 타향이 아니라 정신적 고향에 그 의미를 새겨야 한다.

이러저러한 핑계로 자주 찾아 갈 수 없는 고향이기에 명절을 매개로 고향을 찾는 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조상들이 살던 곳 그리고 우리의 뿌리를 알게끔 일깨워 주는 조상들이 잠들어 계신 곳으로 돌아가 차례를 올리며 정신적 교감을 이루도록 노력하자. 아울러 삶의 열정 속에서 잠시 잊었던 정신의 고향을 찾아 젊음의 패기에서 발랄한 움직임만 있었던 들뜬 마음을 고향의 흙내음으로 식히면서 조상들과의 조용한 만남을 통해 진정한 안식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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