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완하 시인ㆍ한남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새해를 맞이하면서 나는 꿈을 꾸어본다. 그것은 우리 국민들 모두가 올 해는 한편씩이라도 모두 시를 써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 이유는 우리가 시정신을 간직하고 사는 일이 중요한 까닭이다. '백지의 공포'라는 말로 시인으로 살아가는 삶의 고통스러움을 고백한 외국의 시인이 있다.
그러므로 시인들은 살아갈 시간의 '백지'와 시가 쓰여질 원고지의 '백지' 사이에 변증법적 관계가 설정된다.
시인들은 삶의 고통과 시적 창조의 고통을 동시에 짐 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시인들은 그 고통을 딛고, 더 빛나는 언어의 광채를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진정한 역설의 의미인 것이다. 시인들은 고통스러운 세계로부터 상상력의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시의 정신을 펼쳐내기 위해 '피를 잉크 삼아' 쓰고 또 쓴다.
그들은 대량 복제의 규격화된 사회에서 자신만의 내밀한 공간에 촛불을 밝히고 시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시인들이 '백지의 공포'와 싸우는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된다. 시인들이 이렇게 고통을 기꺼이 받아들여 가며 시를 쓰는 이유는 결코 자신의 안위를 위한 게 아니다. 시인들은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서 세계와의 싸움을 보여주고자 한다.
시인들은 자신의 절망과 어둠을 넘어 용기와 결단을 통해 이 세계의 절망이나 어둠과 대결하는 지혜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 결과 시인들이 한 시대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인식하며 그 사이의 조화를 꾀하여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꿈과 의지를 펼쳐주는 것이다. 시인들은 미래에 대한 전망이 부재 하는 시대, 인간에 대한 신뢰가 극도의 상실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며 꿈의 세계를 펼쳐 보인다. 그들은 상투화, 자동화, 일상화된 자아와 세계 사이에 시정신을 주입시켜 낡고 분열된 세계를 새롭게 정립시킨다.
그들은 모순된 상황을 해체시키고, 갈고 닦은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창조적 이미지의 공간을 만든다. 이는 혼돈과 무질서한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의 생명을 지켜내는 참다운 일이면서, 그 생명이 생명답게 발휘될 수 있도록 꿈의 세계를 그려 보여주는 일이라 할 수 있다.
문학이란 우리 삶을 통해서 도전해 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인생관과 연관되는 큰 문제의 선택과, 조사(助詞) 하나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하는 작품 완성을 향한 아주 작은 선택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고통이야말로 우리 삶을 어떻게 성취할 것인가, 한 편의 시를 어떻게 완성시킬 것인가 하는 참다운 기쁨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점에서 작품의 성패를 떠나서라도 시에 관심을 갖는 일 자체는 대단히 소중한 것이다. 바로 그것이 시정신이 중요한 까닭이다.
우리 삶은 현실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신의 깊이를 향한 자기 몰입과 치열하게 그것을 밀고 나아가는 데서도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 삶은 얼마든지 풍요로워질 수 있게 된다.
시정신을 통해서 자기만의 진실을 펼쳐 내려는 노력과 마음의 풍요를 누리는 삶이란 진정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자본주의 앞에 굴복해 버린 정신, 생명에 대한 외경과 존중의 자세가 희박해진 시대에 그것들을 단호하게 부정하는 것이 시정신이다.
또한 그러한 의지를 갖는 사람들만이 시를 쓸 수 있는 것이다.
시정신을 간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의 삶은 얼마든지 가치 있고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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