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준 청주대 교수] 옐로우 저널리즘, 즉 선정적인 보도 행태는 언론이 정확한 정보 전달 사명의 본질을 망각하고 판매 부수를 높이기 위해 여러 자극적인 기사 내용을 작성해 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본래 미국의 언론 역사에서 탄생한 용어로, 뉴욕의 두 개 신문사 간 경쟁 과정에서 기사 내용이 객관적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적이고 자극적이며 선정적인 것으로 채워지는데, 흥밋거리의 이야기 소재로 변질돼 버려지는 것이다.

이들 두 개 황색 신문사의 극단적인 경쟁 상황 전개로 국가 간 전쟁 발발에까지 이르는 위험한 결과를 초래했는데, 미국과 스페인 간의 갈등을 자사 신문의 구독자 확보를 위한 기회로 삼고 스페인의 지배 하에 있던 쿠바 현지에 특파원을 파견해 일방적으로 왜곡된 기사를 흥미 위주로 내보냄으로써 갈등을 일으켜 미국과 스페인 전쟁 발발에 결정적인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

이것은 국내 언론 역사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닌데 영역에 있어서도 정치, 사회, 문화예술 분야 등 광범위하다.

예를 들어 주요 정치적인 이슈가 한 개인의 문제로 흘러가 축소돼 버리기도 하고 그 반대로의 경우 확대돼 문제의 본질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 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제 모바일 등 다양한 개인 미디어의 출현으로 소통의 수단이 훨씬 용이해진 오늘날에는 과장된 정보들이 SNS를 통해 증폭되기도 하고 순기능으로써 집단적 검증과 자정 작용으로 감소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선정적인 뉴스 장사에 눈 먼 황색언론의 행태가 쑥쑥 독버섯처럼 고개를 드는 경우다.

떠도는 악성 메시지들이 신문 지면에 올라오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들이 공론의 장으로 떠밀려 마녀 사냥을 당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보통 이러한 선정적 기사의 주인공은 여성인 경우가 빈도가 높게 나타나는데, 10여 년이 다 돼 가는 지금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당시 한 큐레이터 여성의 사건이 쉽게 떠오른다.

사건의 본질보다는 인권침해적 요소가 다분해 민망한 개인의 신체 사진까지 대서특필해 오히려 거센 여론의 역풍을 맞았던 일이 있었다.

최근에도 역시 이러한 황색 저널리즘이 독버섯처럼 남아있는 바, 더 큰 문제는 방송 뉴스의 주요 시청 시간까지 스멀스멀 진출하고 있는 행태다.

그것은 한 젊은 여성 탤런트의 남녀 관계를 다룬 것으로, 가족 단위 등 여러 다수의 사람들이 동시에 시선을 고정하게 되는 방송 시청의 특성 상 전달되는 민망함의 강도가 높아 거부감으로 시선을 회피할 정도가 된다.

일개 개인의 사생활 문제를 하루에 서너 번 씩 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공적 임무를 띤 방송의 책무인지, 아까운 시간과 경제적 손실은 아닌지 여러 가지 회의가 들지 않을 수 없다.

신문 매체와는 또 다른 방송의 특성을 감안하면 더 이상 반복돼서는 곤란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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