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웅 수필가] 우리 사회에서 좋은 일들이 많고 휘영청 밝은 대보름 보름달처럼 환하고 가슴 따뜻해지는 일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최근에만도 너무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들이 많아 큰 걱정이다. 감금 상태에서 제대로 먹지도 못해 영양실조가 됐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던 소녀, 목사라는 사람이 중학생인 딸을 학대하다 목숨을 잃자 미라 상태로 방치한 일, 엄마가 보고 싶다고 조르는 어린 아들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비닐봉지를 씌워 숨지게 한 비정의 아버지,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 방의 세 모자 사망 사건 등 듣기도 보기도 어렵다. 한 마디로 아동 학대이고 인명 경시 풍조가 만연돼 있고, 감성이 너무 무뎌진 것 같아 가슴 아프다. 마치 해외 토픽 같은 일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인간은 거대한 우주의 원리를 그대로 닮은 존재라니, 사람의 생명과 삶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데…. 교육부는 3월부터 미취학이나 무단결석 학생에 대한 안전관리를 한층 강화한다니 만시지탄이지만 그래도 다행스럽다.

삶의 여백
이런 일들이 있어 착잡하고 안타깝다보니, 전에 감명 길게 읽은 법정 스님의 법문집인 일기일회(一期一會)를 되새겨보고 싶다. 개인의 생애에서 볼 때도 이 사람과 이 한 때를 갖는 이것이 생애에서 단 한 번의 기회라고 여긴다면 순간순간을 뜻 깊게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몇 번이고 계속 만날 수 있다면 범속해지기 쉽겠지만, 처음이면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아무렇게나 스치고 지나칠 수 없을 것이다. 기회란 늘 있는 것이 아니다. 한번 놓치면 다시 돌이키기 어렵다. 오늘 핀 꽃은 어제 핀 꽃이 아니다. 오늘의 나도 어제의 내가 아니다.

묵은 시간에 갇혀 새로운 시간을 등지지 말라. 일기일회는 단 한 번의 기회, 단 한 번의 만남이다. 이 고마움을 세상과 나누기 위해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되어 살아가라. 그것이 불행과 행복을 피하는 길이다. 삶을 소유물로 여기기 때문에 소멸을 두려워한다. 삶은 소유가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모든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도 되지 않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립고 아쉬운 삶의 여백이 필요하다. 무엇이든 가득 채우려고 하지 말라.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불필요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하찮은 생각을 제쳐 두고 본질적인 삶을 인간으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면 행복에도 불행에도 쉽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희로애락
우리는 때로 어부의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한다. 삶의 애증과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우리를 가두고, 욕망이 빈틈없는 그물 속으로 우리 영혼을 몰아간다. 마치 불타고 있는 집 안에 앉아 있으면서도 시간이 촉박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삶에서 가장 신비한 일은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 그때그때 감사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이 일기일회다. 모든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모든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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