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家長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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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07  18: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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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탁 충북보건과학대 교수] 연분홍 진달래가 몹시도 곱던 어느 봄날, 선배의 연락에 오랜 세월 드나들던 고향 근처 허름한 시골 농막에 자리를 잡았다.

낯익은 눈인사를 나누기 무섭게 언제나 그랬듯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장독의 탁배기를 주전자에 담고 전을 부치는 촌로의 좁고 굽은 허리, 걸쭉한 사투리와 잔잔한 미소 또한 언제나 정겹고 푸근함 그대로다.

중천의 봄볕을 머리에 이고 탁배기 한 사발로 마른 목을 축이며 못 난 가장의 서러운 넋두리를 봄바람에 실어 보낸 그날이 그리워진다.

너털웃음에 심성 좋아 늘 따르는 이들이 많았던 선배의 우울한 소식을 접하니 그동안 함께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세상이 묘하게 변한 건지, 내가 변화에 둔감한 건지, 인정머리 없이 나락으로 떨어진 오늘날 가족의 모습과 가장으로서의 삶을 서럽게 토해내며 눈물 쏟던 선배의 모습이 진달래 꽃망울이 아프게 부어오른 오늘따라 새삼 먹먹하게 다가온다.

가난한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렵사리 대학 졸업 후 대기업에 취직해 잘 나가던 직장인으로,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성실히 살았건만 구조 조정이란 세상의 칼바람에 등 떠밀려 모은 재산 털어 시작한 사업이 실패를 했단다. 그 후 가족과의 불화로 혼자 쪽방에서 지내며 낮에는 막노동으로, 밤에는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로 간간이 버티고 있다니 검게 타버린 속내가 어떠할지 말하지 않아도 가슴이 먹먹할 뿐이었다.

어둡고 칙칙한 좁은 골방에서 숱한 밤을 지새며 무능한 가장의 신세를 비관하고 가족을 원망한 시간이 얼마나 길고 깊었을지 짐작이 간다.

요즘 세상에서 경제력을 상실했다는 것은 가장으로서의 권위는커녕 가족들로부터 무시 당하고 외면 받기 십상이다.

세간에 회자되던 자녀를 잘 키우는 세 가지 필수 조건이란 게 있었다. 그 첫째가 엄마의 정보력, 둘째가 아빠의 무관심, 셋째가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라는 것이었다. 그 짧은 얘기 중에도 가장의 무관심은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가 가슴 아프다. 다시 말해 아버지의 자리는 비어있고 말한들 득이 없는 경제적 능력 만을 강요하는 존재로 취급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년의 세대가 살았던 유년 시절, 가장의 존재는 그 어떤 이유를 불문하고 위대함의 시작이며 끝이었다.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대고 몸이 움츠러들던 그 권위는 나랏님도 부럽지 않을 만큼 절대군주 그 자체였다.

저녁 어스름에 귀가하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오순도순 얘기꽃을 피우고 어머니는 밥상을 차려 네모난 상보로 덮어 행여 밥이 식을까 군불 지핀 아랫목 이불 속에 묻어 두던 기억은 가족의 화목과 가장을 배려하던 정겨운 모습으로 아직도 아련하다.

한세월 저쪽의 추억으로 남아 빛 바랜 사진처럼 희미하지만 그것을 오늘에 되새기는 가장의 심정은 애잔하기 그지 없다.

지나간 향수에 젖어 가치관의 타락이니 물질 우선이니 안타까운 세태를 개탄한들 가장에 대한 배려나 존경은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몸과 마음이 약해지는 자포자기를 털어버리고 무겁게 짊어진 가장의 고뇌를 값진 가르침이라 받아들여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하다.

맹자님 말씀처럼 고통은 아무에게나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자긍심을 회복해 당차게 훌훌 털어버리고 일어서 다시 만나는 날, 탁배기 잔 부딪치며 지난 세월 고통을 호탕한 웃음으로 되새겼으면 좋으련만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돌아오는 길엔 진종일 진눈개비만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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