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현 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완숙한 주조기술ㆍ도금술의 최고봉

▲백제금동대향로.
향로(香爐)는 고대 인도, 중국 등지에서 냄새의 제거, 종교의식 그리고 구도자의 수양정진을 위해 향을 피웠던 그릇을 말한다.

인도에서는 4천년 전에 향로가 만들어 졌으며, 중국에서는 전국시대 말기에 등장하여 한대까지 크게 유행하였다.

특히 전한 무제부터 왕족의 무덤을 중심으로 출토되는데, 왕족을 제후국의 왕으로 봉하는 조치에 따라 왕실에서 만들어진 박산향로(博山香爐)가 각 지방으로 확산·보급되었다.

박산향로의 박산은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신령스러운 산과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상서로운 동물이 살고 있다는 신비로운 세계를 의미하며 중국에서는 한대와 삼국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창의성ㆍ조형성에 의한 생동감 표현

우리나라에서 박산향로의 출토는 평양낙랑고분인 석암리(9호, 219호분)고분에서 출토된 청동박산향로가 있으며, 이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의 출토는 백제의 수준 높은 금속공예기술과 뛰어난 예술적 역량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백제금동대향로(국보 287호)의 제작 시기는 함께 출토된 백제 창왕명 석조사리감(百濟昌王銘石造舍利龕)의 명문에서 보듯이 백제 27대 위덕왕(창왕)대의 것으로 보인다.

이 향로는 높이가 64cm, 최대지름 19cm, 무게 11.85kg나 되는 유례없는 대작으로 중국의 어떠한 박산향로와 비교할 수 없는 걸작품으로 용과 봉황의 비중이 상당히 두드러져 있다.

이 향로는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향로의 꼭대기에는 봉황 한 마리가 여의주(如意珠)를 턱밑에 끼고 날개를 활짝 펴고 서 있는 모습이며, 그 아래로 신선들이 사는 박산(博山)이 있다.

맨 아랫부분에는 한 마리의 용이 살아 꿈틀거리듯 다리 하나를 치켜들고 갓 피어나려는 연꽃봉오리를 입으로 받치고 있는 형상이다. 연기는 봉황의 가슴과 뚜껑에 뚫려 있는 12개의 구멍으로 피어오르도록 고안되어 있다.

동양 근본원리, 백제사상으로 융합

백제금동대향로는 우리고대문화의 결정체로 그 정교함과 조형미에 있어서 동아시아 금속공예의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용접부분이 네 부분밖에 안되는데 그 정교한 모습을 어떻게 통째로 주조했는지 놀라운 기술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금이 수은에 잘 녹으며 수은은 100℃ 정도에서 모두 날아가 버리는 금과 수은의 성질을 잘 파악한 금동아말감법을 이용한 도금기술은 백제의 하이테크였던 것이다.

신기술이 집약된 이 향로는 전체적으로 보아 창의성과 조형성이 뛰어나고 세부표현에 생동감이 넘쳐흐르며, 도교 사상과 불교 사상 등 동양 사상의 근본원리를 백제사상으로 융합하며 완벽한 조형예술(造形藝術)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금속공예 기술면에서도 완숙한 주조기술(鑄造機術)과 정치(精治)한 도금술(鍍金術)이 이루어낸 최대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 금동아말감법 :구리로 된 본체에 수은과 금을 섞은 도금액(아말감)을 바른 뒤 가열하면 수은은 날아가고 금만 남게 되어 도금되는 기술.



윤용현연구관(국립중앙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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