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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학생들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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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3.24  10: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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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우연히 사무실 신문 보관함에 꽂혀있는 책에 눈길이 갔다. 꺼내 보니 작년에 청주시 평생학습관에서 만든 '문해! 삶의 등불이다'라는 특이한 제목의 책이다. 궁금해 읽어 봤다. 글을 모르는 비문해인들에게 한글을 쓸 수 있도록 가르치고 그 결과물을 엮은 책이었다. 특별히 이름 있는 사람들의 작품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감동 또 감동이었다.

'문해지도사'라는 생소한 직업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한글을 모르는 분들에게 글을 가르쳐서 읽고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직업이란다. 책머리에는 문해지도사들의 소감문도 적혀 있다. 팔구십 세의 어른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보람 된 일이라는 생각이다. 'ㄱ'자를 가르치기 위해 손을 몇 번을 잡아 줘가며 반복 또 반복하면서 많이 힘들었지만 보람을 느꼈다는 어느 문해지도사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만 같다. 난생 처음 딸에게 편지를 쓰고 딸과 함께 펑펑 울기도 했다는 내용을 읽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많은 어르신들이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배움의 기회조차 가질 수 없는 시대를 사셨다. 동생들 뒷바라지를 하다 결혼해서는 남편과 자식들 뒷바라지로 평생을, 그야말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 채 불편하게 살았다. 일 년 동안 배운 한글로 직접 시를 지어 시화전을 하였다니, 그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컸을까 감히 짐작할 수도 없으리라.

 한 분 한 분 쓴 시들을 읽으며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가끔 받침이 틀리기도, 줄이 비뚤어지기도 했지만, 모두가 한글 공부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행복했다고 한다. 90여 분의 시 한 편, 한 편에는 그 분들의 지나온 삶과,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 대한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그 중 하나를 적어 본다. 제목은 '한글 공부'다. 가뭄에 고추밭에 율무밭이/타들어간다 풀도 뽑아야 하고/물도 퍼다 주어야 하는데/전화가 울린다/한글 선생님 전화다/한글 공부하는 날이란다/아이고 깜박 잊어 버렸네/몸도 바쁘고 할 일은 많고/공부도 해야 하고 허리도 아프고/다리도 아프고 그래도/공부하는 시간이 참 좋다/공부하다 보면 밭에 가기 싫다.

 그분들의 평균 연령은 80세가 넘는다. 그러나 공부하는 열정만큼은 나이를 무색하게 했다. 글을 배우고 나니 은행에 가서 신청서도 쓸 수 있고 시내버스 간판도 읽을 수 있어 사는 것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늦깎이 학생들의 공부에 필자가 유독 더 감동하고 공감하는 것은 비슷한 경험이 있어 그런지도 모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부모님을 도와 농사일을 하며 지냈다. 그러나 공부에 대한 갈망은 내려놓을 수가 없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우여곡절 끝에 친구들보다 2년이나 늦은 늦깎이 중학생이 되었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상급학교까지 진학을 해 지금에 이르렀다.

 연세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문해학당 할머니들이 배우고 또 배워서 편지도 쓰고 시도 쓰는 것은 그만큼 문해에 대한 절실함과 삶에 대한 행복감이 컸을 것이다. 필자도 그랬다. 올해도 많은 이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프로그램이 지속되어 더 많은 어머니들의 행복한 삶이 이어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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