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안상윤 건양대학교 병원경영학과 교수] 1997년 보라매병원의 응급환자 뇌사판정 사건, 2005년 세브란스병원 김 할머니 사건을 계기로 이루어진 사회적 토론과정에서 지난 1월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일명 '웰다잉 법'이라고 부른다. 웰다잉 법을 잉태시키는 중요한 기폭제가 된 이들 사건은 서로 상반된 방향성을 갖고 있다. 전자는 연명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중단한 경우이고, 후자는 존엄한 인간으로서 환자의 품위 있는 죽음 결정에 대한 가족들과 의료진 사이의 법률적 다툼이다.

 서로 방향성은 다르지만 이 두 사건은 모두 웰빙을 위해 웰다잉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지지해주고 있다. 하나는 언제 깨어날지도 모를 환자를 위해 유가족들이 경제적 파탄을 감수하는 것이 옳은가의 문제이다. 또 하나는 통념상 살 만큼 충분히 산 뇌사상태의 노인이 산소 호흡기를 부착하고 숨만 쉬는 것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삶인가의 문제이다. 물론, 법률이 갖는 의미는 이보다 더 심층적이고 복잡하지만, 법 제정의 중요한 배경은 결국 이 두 가지 문제로 귀결될 수 있다.

 웰다잉 법은 1년 6개월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시행 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다각도의 심층적인 보완이 요구된다. 그 보완의 핵심은 단연 소통에 관한 것이다. 제정된 법률에 의하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는 경우는 환자 본인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경우, 환자가 의식이 없는 경우, 그리고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 등 세 가지이다. 본인의 의사를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경우는 시행에 큰 문제가 없겠지만, 나머지 두 가지 경우에는 법에서 정하지 못한 틈새 문제들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 그만큼 웰 다잉 법은 생명의 존엄성, 유가족의 삶, 윤리적인 문제 등과 복잡하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사행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연명치료 중단의 조건으로 제시된 연명치료 무의미성을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의료진과 환자 및 유가족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라는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 따라서 의료진이 제시하는 연명치료 중단 이유를 환자 유가족이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세브란스병원의 김 할머니 사건의 사례처럼 반대의 경우도 성립한다. 또한 법에서는 환자 가족 2명이 일치하는 진술이 있으면 담당 의사가 확인을 거쳐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했지만, 2명의 유가족에 대한 규정이 더 세밀하게 확정돼야 추가적인 문제발생을 막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범사회적인 '연명치료 중단 윤리위원회'를 설치·운영하고, 의료기관은 간호사나 사회복지사 같은 전문가들이 소수의 바쁜 의료진을 대신해 일정기간 환자나 가족과 지속적인 상담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100세의 삶이 재앙으로 닥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치매, 뇌줄중 등 가망 없는 만성질환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 로드맵 마련을 위하여 범사회적 소통의 장도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