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이동규 청주순복음교회 담임목사] 요즘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팍팍하고 경쟁이 심한 시대를 살다보니 기존에 있던 학연과 지연 논쟁을 넘어 이제는 출생의 배경까지 신경을 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내가 다른 출발선상에 있으니 더 앞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렇게 해서라도 다른 사람들과 차별을 만들고 싶은 욕망의 표현이다.

 성경의 열왕기하 5장에 나아만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당시 이스라엘은 인접한 아람이란 나라와 계속해서 분쟁 중이었다. 나아만은 이 아람의 위대한 장군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장군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가 나병환자였다는 사실이다. 나병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장군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십자군 전쟁 당시 잠시 동안 예루살렘을 다스렸던 보두앵 4세의 경우를 생각하면 그리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느 날 나아만 장군은 우연치 않게 한 여종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이스라엘에 있는 위대한 예언자에게 가면 나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아만 장군은 즉시 아람의 왕에게 가서 이 사실을 전하고 자신의 군대와 함께 이스라엘로 향한다. 그런데 그가 이스라엘 땅에 도착하자 예언자의 시종 하나가 그를 맞이한 후에 요단강에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는 말한 남기고 급히 사라진다. 나아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한 나라의 장군인 자신을 예언자가 직접 나와 맞이하고 집 안으로 들여 환대해도 모자랄 지경에 달랑 사환 한 명이 나와 말 한마디 던지고 그냥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나아만은 말 머리를 돌려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의 종 하나가 말하기를 "장군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다면 행하지 않았겠습니까? 하물며 강물에 가서 깨끗하게 씻으라 하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나아만은 이 말을 듣고 생각을 돌려 요단강에서 몸을 씻었다. 그리고 그 예언자의 말과 같이 장군의 나병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처음에 나아만 장군은 자신이 나병을 치료받기 위해 적국인 이스라엘에 어렵게 왔다는 사실보다는 자신이 아람 나라의 장군이라는 사실에 더욱 신경을 썼다. 그러니 나병을 고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상황에서도 내가 진짜 누구인지 보다는 내가 남들보다 더 위대하고 높은 사람이라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이런 나아만의 모습은 내 출신 배경과 가족력까지 밝혀가며 남들보다 더 이루려고 몸부림치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진정한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고 알리기보다는 부모나 다른 가족의 지위 혹은 물질을 이용하여 남들보다 더 빠르고 편하게 위로 올라가고 싶은 욕망이 닮았다.

 우리의 참된 행복은 금수저를 든 그 모습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속에 있는 참된 모습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할 때 시작된다. 때로 내 진짜 모습이 좀 부족하여도 나병과 같은 나의 단점을 아버지의 지위나 가족의 재력으로 덮으려고 한다면 참된 행복의 길과는 점점 멀어지게 된다. 행복의 파랑새는 우리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만들어져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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