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처음에는 별 대수롭지 않게 대했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물건이 있다. 내가 항상 연구실에서 쓰는 머그컵이 그렇다. 이 머그컵은 내가 처음 일주일에 3시간 시간강사로 강의를 하게 되었을 때 근처에 살고 있어 자주 보았던 작은오빠가 어느 날 불쑥 강사실 책상에 두고 쓰라고 건네준 것이다. 예상치도 않게 갑자기 머그컵을 받으니 얼떨떨하기도 하고 당시 오빠가 수입 없이 빠듯한 생활비로 지내고 있어서 커피 같은 것 살 때 사은품으로 받은 것인 줄 알고 "공짜로 받았나" 했더니 오빠는 겸손한 목소리로 "아니, 샀다" 했다. 여동생이 대학에 강의를 나가게 되었다고 오빠가 문구점에서 고심해서 고른 선물이었는데, 그때는 몰라줬다.

 지금 같으면 여러 사람들이 들락거리는 강사실에 그렇게 소중한 컵을 두고 다니지는 않을 테지만 그때만 해도 그 컵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한 것도 아니고 해서 컵을 강사실에 두고 다녔는지 집에서 썼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후에 인덕원으로 이사를 갔을 때도 그리고 청주에 내려오게 되었을 때도 그 컵을 가지고 온지 어느덧 햇수로 16년차, 내 연구실 터줏대감이 되었다. 그 뒤로 자주는 아니지만 커피 잔들을 새로 사기도 해서 지금 연구실에는 다른 잔들도 몇 개 된다. 손님이 오면 받침이 있는 깨끗한 커피 잔들을 내어놓지만 나는 항상 이 머그컵을 사용한다.

 이 머그컵은 아주 심플한 디자인에 절제된 운치가 있다. 커피 잔이 아니니 받침은 없지만 나름 격식을 갖춰 뚜껑이 함께 있다. 전체 흰색 바탕에 정면에는 하늘이 내다보이는 작은 창과 같은 가로세로 약 2cm 조금 넘을 정도의 정사각형 파란 이미지가 있다. 그림 밑에는 아주 작은 글씨로 'CLOUD NO 1/the blue sky'라고 두 줄로 적혀있다. 작은 창으로 파란 하늘이 들어와 단정하면서도 심심하지 않고 적당히 여백을 두고 구름이 가볍게 떠 있어 하늘도 외롭지 않아 보인다.

 "하늘이 외로움 아님은 구름이 그리움 머금은 때문" 머그컵 위의 작은 창으로 구름 곁들인 하늘을 들여다보다 보니까 어느새 요즘 한없이 되뇌는 시구로 되돌아온다. 간혹 꿈에서 깰 때 문구나 단어, 문장이나 이미지가 선명하게 남을 때가 있는데 이 시구도 예전에 잠에서 깰 무렵 내 귓가에 울리던 것을 깨자마자 적어 놓은 것이다. 그때 머릿속에 한없이 넓고 높은 무한한 하늘은 얼마나 외로울까 하는 마음이 들면서 그래도 작고 미미하지만 그리움 머금은 구름이 그 곁에 머물고 있어 외롭지 않을 수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득 유한한 인생을 마감하고 떠난 이와 이곳에 남은 자가 바로 하늘과 구름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느껴졌다. 그래도 그동안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는데 얼마 전 아버지를 보내드린 후로는 시구 속 하늘과 구름의 이미지가 저 가없는 하늘같아지신 아버지와 내 모습으로 머릿속에 계속 맴돈다. 작은오빠가 준 머그컵 위의 구름 깃든 파란 하늘처럼 내 그리움 어느새 아버지 곁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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