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도쿠나가 충청대 교수] "일본엔 일식집이 없어"하니까 학생들이 깜짝 놀란다. 스시, 사시미... 그게 다 일본음식인데 본고장인 일본에 일식집이 없다니 도대체 무슨 말인가 하고 다들 의아해 하는 눈치다. "일본에선 전통요리를 일식이라 하지 않고 화식(和食)이라 한단다"면서 음식 이야기로 물꼬를 트니까 그날 수업은 단연 몰입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화평할 화(和)' 자, 일본어로는 '와'로 발음되는데 최근 한국에서도 '화과자(和菓子)'나 '와규(和牛)'처럼 주로 음식과 관련돼서 머리에 '화' 자가 붙는 말을 제법 쉽게 듣는다. 어원을 추적해 보면 '화' 자로써 일본다움을 상징케 하는 일은 고대 일본의 정치적 중심지였던 '야마토(大和, 지금의 나라현)'을 가리키는 지명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고사기(古事記, 712년 편찬)'에는 푸르른 산에 겹겹이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장 야마토를 찬미하는 노래가 수록돼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일본에서 '화' 자는 '일본고유의' 또는 '일본이 전통적인'이라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흡사 쓰임새가 한국어의 '한(韓)'자와 상통해 '화지(和紙, 전통기법으로 만들어진 종이)', '화복(和服, 일본의 전통의상=기모노)' 등 현대어에서도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이 '화'의 정신, 간절히 평화를 희구하는 마음을 나라와 민족의 핵심가치로 삼으려 했던 이가 일본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존경하는 고대의 정치가, 성덕태자(聖德太子)였다. 604년에 그가 제정한 '십칠조헌법(十七條憲法)'에 보면 제1조에 "以和爲貴", 즉 '평화를 귀하게 여길지어다'라는 구절이 있다. 성덕태자는 백제계의 혈통을 받은 황족으로서 내치(內治)뿐만 아니라 수(隨)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일본의 위신을 세우고, 선진문화를 도입하는 등 뛰어난 외교적 감각의 소유자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그는 당시 극심했던 호족 간의 대립을 불식하고 복잡한 국제적 관계 속에서 국가를 안정되게 운영하기 위해 화의 정신을 강조하고, 그것을 헌법 즉 국정 근간의 으뜸 덕목으로 명시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쇄국정책이 채택되던 근세 후기에 일본을 신국(神國)으로 간주하는 편협하고 폐쇄적인 국수주의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고, 특히 명치유신 이후에 '화혼(和魂)'이라는 말이 군국주의의 슬로건으로 악용되기도 했으나 평화를 사랑하는 일본인의 정신계보는 대에 대를 이어 민족이 지켜야 할 가장 소중한 가치로서 후세로 전달되었다. 세계적인 대기업 파나소닉의 창업주로 '경영의 신'이라고 불리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 幸之助)는 화의 정신을 잊어버리면 회사가 도산할 거라고까지 단언했다고 한다.

 지난 5월 2일, 일본헌법 제9조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노벨상위원회에서 수리되었다. 올해로 3년 연속이지만 사람이 아닌 법이 수상대상자로 정식으로 등록되는 것은 지극히 드문 일이다. 일본 국회의원 73명이 추천인으로 이에 동참했다. 수상 결과는 10월 7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발표되는데 그 귀취가 주목된다.

 "우리는 전세계 국민들이 한결 같이 공포와 결핍으로부터 해방되고, 평화 가운데 생존할 권리를 갖는 것을 확인한다(일본헌법 전문)". "以和爲貴" 이것이 일본의 전통적인 국시(國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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