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 가덕면에 귀농한 이원섭씨 >3<


30년의 도회지 생활을 접고 11년 전 청원 가덕면으로 귀농한 이원섭씨(54ㆍ사진).

수확하고 있는 딸기 품종인 설향은 단맛이 뛰어나고, 과육이 단단해 소비자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며 농원을 설명해주는 그는 가덕면 일대에서 유명한 친환경농업인이지만 처음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시작한 토박이 농업인은 아니다.

농사를 짓기 전 그는 누에고치 생사를 생산하는 근로자로 평범한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그러나 상하 동료 간 다양한 인간관계와 반복되는 일상에 따분함을 느끼고 인생의 전환점을 찾기 위해 직장생활을 접었다.

사업을 하면 잘 할 것 같아 이것저것 손을 대봤지만 세상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출 규모 40억 원 대의 중견 토목회사를 운영하다 경영난을 겪으면서 귀농을 생각하게 됐다.

1998년 10월 그는 농사를 짓기로 하고 청원군 가덕면 노동리로 내려왔다.

막상 농사를 지으려하니 텃밭을 가꿔 본 일이 없어 막막했다. "농사를 지으려면 땅을 빌려야 하는데 사람도 아는 사람도 없고 기술도 없고 답답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논 5000㎡에서 마늘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중국산 마늘 수입으로 타격을 받아 수천만 원의 빚만 떠안았다.

이후 소득과 판로가 안정적인 작목 찾다가 딸기와 인연을 맺게 됐다.

의욕만 갖고 시작했던 딸기 농사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첫 해 4동의 비닐하우스에서 딸기농사를 지었지만 경험이 없는데다 정보부족으로 초기자본을 까먹는 등 숱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듬해에도 좁은 면적에 비닐하우스를 촘촘히 지어 일조량이 부족해 또 한번의 좌절을 맛 보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시행착오를 거쳐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전국을 돌며 재배농가를 찾아다니며 재배기술을 배우고 친환경 딸기 재배 농법을 도입하는 등 밤낮을 잊고 딸기와 싸움을 벌였다.

"정말 열심히 일했죠. 아침 5시에 일어나 오후 9시까지 한숨도 쉬지 않았어요. 좋아하던 담배까지 끊었죠"

점차 자신감이 생기며 딸기 작황도 좋아져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뿌리에 산소를 공급하는 이른바 산소농법으로 딸기를 재배해 생산량이 10% 늘었고 가격도 20%나 더 받을 수 있어 보람이 컸다.

이 산소농법으로 토양에 축적되는 염류농도를 감소시켜 비닐하우스 딸기재배의 가장 큰 문제점인 연작장애도 해결했다.

이와 같은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으로 이씨는 6개 시설하우스(5000㎡)에서 1.5kg 딸기 1만2000 상자를 생산, 연간 4000만~5000만원의 순이익을 올리고 있다.

이 씨는 농사는 시설중심의 노동집약적 산업이 아닌 기술집약적 산업이라며 이제는 과학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농업에서 성공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씨는 청원생명딸기연구회 회장을 맡아 농업인들에게 기본 이론을 이해시키고 영농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능력배양과 지역농업발전을 선도하는 전문 인력 육성에 기여하고 있다.

이 씨는 지금도 딸기농사에 대해 공부할 부분이 있거나 학습기회가 생기면 전국 어디든지 달려간다.

이 씨는 세계적인 추세가 간편하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작은 과일을 선호하는 쪽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딸기 재배가 전망이 밝고 특히 멀리 수송을 할 수 없는 딸기의 특성 때문에 수입이 힘들어 fta에도 부감을 느끼지 않는다고 딸기의 강점을 설파했다.

귀농에 대한 충고를 부탁하자 그는 "농사는 머리로 지으면 십중팔구 실패한다"며 "몸으로 농사를 체득한 후 머리를 사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촌에 들어오기 전 머리로 그려본 계산이 현실에 적용했을 때 잘 맞지 않는다는 게 그의 체험에서 우러난 조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갈수록 올라가는 농자재 값이 걱정이다. 비닐하우스, 파이프와 포장지 등 안 오르는 게 없다.

그래도 미래에 대한 희망은 여전하다 자신이 생산한 상품에 대한 자부심과 노력한 만큼 보상을 주는 땅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청원=이능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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