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란 변호사

[이영란 변호사] 청소년기는 인생의 절기상 '청춘', 즉 '봄날'이 막 시작되는 시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순간의 잘못으로 그 시기에 형사처벌을 받을 처지에 놓이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소위 '비행청소년'이라 부른다. 변호사로서 법정에서 '비행청소년'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나쁜 아이'인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곤 했었다.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관대한 처분이 수차례 있었으나, 또 다시 법정에 서는 아이들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청주지방법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참여법정(비행청소년의 또래로 구성된 참여인단이 비행청소년에 대하여 부과과제를 결정하고, 비행청소년이 그 과제를 정해진 기간 동안 잘 이행하면 더 이상의 형사적 절차진행 없이 사건을 종결하는 방식)에서 진행인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단지 그들에게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모와 대화할 기회, 선생님과 대화할 기회, 이웃과 소통할 기회, 다양한 경험을 해 볼 기회 등과 같은 기회들 말이다.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자전거를 훔치려다 붙잡힌 14세 소년에 대한 청소년참여법정을 진행할 때였다. 참여인단 중 유독 한 아이가 누구보다 열심히 평의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흥미를 느꼈다. 그 아이에게 참여인단으로 참여한 소감을 물었더니, "저는 오늘 법정에 왔던 그 친구처럼 그 자리에 앉아봤어요. 부과과제로 부모님과 교환일기쓰기, 봉사활동하기 등을 했는데, 정말 좋았어요. 그리고 참여인단으로서 다른 친구의 부과과제를 선정하다 보니 앞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어려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 아이는 몇 달 전에 초등학교 동창친구들과 상가 앞 뽑기 기계를 털려다가 붙잡혀서 청소년참여법정에 왔던 아이였다. 그 아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비행청소년은 개선의 여지가 없는 나쁜 아이'라는 선입견은 깨졌고, 어떤 기회가 주어지느냐에 따라 그들도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회를 주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다. 그 기회라는 것이 거창한 것도 아니다. 내 아이와 눈 맞추고 이야기하기, 함께 산책하기, 이웃의 아이와 인사하기 등 아주 작고 사소한 모든 것들이 아이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곧 초여름이다. 우리 주위에 아직도 꽃샘추위를 온 몸으로 겪고 있는 아이들이 없는지 살펴보자. 그것이 내 아이든 이웃의 아이든 간에. 그 아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이 그 아이의 인생을 변화시킬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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