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형 김천대 교수

 

[김기형 김천대 교수] 나는 아들과 딸 쌍둥이의 아빠다. 남자 아이는 대건이고 여자 아이는 효주다. 보통의 성실하고 가정적인 아빠의 경우 많은 시간을 자녀들과 놀아 주며 보낸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이 유치원에서부터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헛된 꿈을 좇으며 이러한 행동이 모두 가족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 꿈을 좇던 중 배신의 쓰디쓴 잔을 마신 후, 일 년 반 정도 감정의 휴식을 취하고 올해는 아이들이 참여하는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운동회라 이를 보려고 아내와 함께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갔다.

 내가 어릴 적에 본 초등학교 운동회와 달랐다. 운동장 가운데에서 아이들이 반별로 투호던지기, 재기차기 같은 민속놀이와 줄넘기, 피구 등을 한꺼번에 진행하고 있었다. 옛날에는 여러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단일 종목이 진행되었는데 말이다. 또한 청백으로 나뉘어 줄다리기와 오재미를 만들어 박을 터뜨리는 경기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년별 달리기는 과거와 같았다. 달리기를 한 아이들의 손목에 순위를 표시하는 고무도장을 찍어주는 모습과 달리는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부모들의 응원 소리는 옛날 운동회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런데 참으로 특이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저학년 초등학생들의 경우 모두 열심히 결승선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고학년 학생들의 경우 초반에는 열심히 달리다가 중간쯤 되어 1등이 결정되는 분위기가 되자 2등으로 달리는 아이들부터 차츰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4등, 5등의 아이들은 아예 달리던 것을 멈추고 걸어가고 있었다. 물론 1등과 2등의 차이가 얼마 되지 않아 순위가 역전될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치열한 순위 경쟁이 벌어졌다. 부모로서 내가 본 최초의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에는 1등의 질주만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좀 씁쓸했다. 1등을 향해 달리는 아이들 그리고 1등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달리기를 멈추고 걸어가는 아이들과 이러한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부모들이 1등을 해야만 이 험난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고 자녀들에게 교육을 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대한민국의 교육자들이 교육 현장에서 1등을 하는 소위 상위 1퍼센트의 엘리트 학생만을 잘 관리하여 이 '우수' 학생들을 더 큰 대회에 내보내 학교의 명예를 빛내는 데만 전념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1등만이 우리의 기억에 남을 것이고 그 외는 기억에 남지 않는 들러리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치지는 않을 것이다. 만일 이러한 일들이 대한민국에서 자행되고 있다면 그들은 부모가 아니며 교육자도 아니다.

 부모와 학교 그리고 우리 사회는 아이들에게 몇 등을 차지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달리는 가치를 알려줘야 한다. 승패를 떠나서 함께 달리고 그리고 자신이 비록 1등을 하지 못하더라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성실히 달린다면 그것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아이들에게 알려 줘야 할 것이다.

 달리기에서 대건이는 3등을 했고, 효주는 2등을 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아이들에게 너희 둘 다 치타처럼 달렸고 그렇게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고 말하면서 치킨을 시켜 주었다. 치킨을 먹으면서 대건이는 "1등을 하지 않은 것이 더 잘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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