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2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계 평가

"현대미술의 최첨단을 소개한다는 베니스 비엔날레 원래 취지는 빛이 바래고 정치적 색채만 짙어졌다."

제52회를 맞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를 바라보는 대체적인 평이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와 자르디니의 국가관 전시가 언론에 하나 둘씩 공개되자 국내 미술계 인사들은 대체로 이렇게 평가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사상 최초로 미국인이 총감독을 맡으면서 어느 정도 예견된 결과였다는 시각도 있다. 예일대 교수이자 유명한 미술평론가 겸 큐레이터인 로버트 스토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탈피해 과거의 미술이 현재의 미술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를 보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루이즈 부르주아, 게르하르트 리히터, 솔 르윗, 지그마르 폴케 등 생존 원로거장들의 초, 중년기 작품이 이탈리아관 일대에서 대규모로 전시됐다.

비엔날레 원래 취지에 맞게 본전시나 국가관 전시 모두 젊은 작가 비중이 여전히 높았으나 극단적으로 실험정신이 강조된 작품보다는 이미 상당히 정제된 작품이 대다수였다는 지적이 많다.

파격적인 영상이나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설치로 시장터처럼 관객몰이를 하는 이색 작품은 눈에 띄지 않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아트페어장에 내놓아도 금방 주인을찾을 수 있을 듯한 작품이 많다는 뜻이다.

또 총감독이 공약한 대로 신설되거나 보강된 아프리카관과 터키관, 레바논관 등은 일단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앙골라, 르완다 등 정치ㆍ경제적 곤궁에 처한 제3세계 미술을 소개하면서 "지금 아프리카에서 왜 미술을 해야 하나"라는 물음을 이끌어내고자 한 아프리카관은 참신하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이런 기획은 이번 비엔날레에 정치적 색채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아시아 작가로는 중국과 일본, 인도만 포함됐고 한국을 비롯한 나머지 국가 작가는 본전시에 끼지 못해 이 역시 여러 가지 해석을 낳고 있다.

전시장에서 만난 안미희 광주비엔날레 전시탐장은 "상당히 정치적인 비엔날레"라며 "남미와 아프리카 등 자주 접할 수 없었던 지역의 미술을 보게 돼 흥미롭기도 하다"고 말했다.

실험정신의 퇴색과 정치색 강화는 국가관 전시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보편적인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소피 칼을 내세운 프랑스 관이나 트레이시 에민을 내세운 영국관 등도 모두 인기를 끌었지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해 내는 전시는 아니었다.

일본관은 히로시마 원폭 지역의 돌 등을 탁본처럼 떠내는 작업을 한 오카베 마사오를 내세워 미묘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인 박신의 경희대 교수는 "이번 국가관 전시를 보고 이제 본격적으로 국가관 전시가 경쟁체제에 돌입했다는 실감이 든다"고 지적했다.

박교수는 "각국마다 너무나 뻔한 주제, 뻔한 작가들을 자신감 있게 내세우면서 그들 작품의 메시지와 개념을 밀고 나가는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한국관 전시에 대해서는 "전시장이 워낙 규모가 작고 외진 곳이라 아쉬움이 남지만 어느 정도 시각적인 인상을 남기는 데는 성공한 것 같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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