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섬마을 선생님이 겪은 천인공노할 수난사건은 분노를 넘어 황당하고 허탈하게 만든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음미해봐야 한다. 뭇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섬이 우리가 생각해왔던 그런 낭만적인 곳이 아니었구나"라는 것이다. 또 "우리 인식과는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들린다. 이번 사건은 섬의 역사와 풍속, 의식구조 등 섬의 특수한 문화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사실 섬은 그리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고단한 삶을 이어온 곳이다. 좁은 땅에, 그것도 대부분 가파른 산지이고 경작지가 넓지 않아 주민들의 양식을 해결하기 어렵다. 주식은 자급자족에 늘 턱없이 부족했다. 섬은 바다에 의해 외부와 단절된 곳이다. 바다는 어디로든지 갈 수 있게 해주는 길이자 동시에 섬을 외부세계와 단절시키는 울타리이기도 하다. 폐쇄된 환경이다. 그렇게 수백 년, 수천 년을 살아왔다.

 제주도가 좋아서 그 섬에 살고 있는 한 친구는 "몇 년 살고 보니 답답하다"고 한다. 일망무제한 그 넓은 바다를 매일 보고 사는 사람이 답답하게 느낀다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섬의 주민들은 모두가 운명공동체였다. 외부인은 그런 의식을 인식하지 못한다. 섬 사람들과 섞여 사는 게 쉬운 일도 아니다. 폐쇄된 공간에서 오랜 세월 그들만의 세계를 살아온 주민들이 외부인을 쉽게 용납할리도 없다. '육지 것'들이 들어와 잘난 체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오래 전 인천광역시에 속한 한 섬에 사는 지인으로부터 들은 섬 사람들의 의식구조에 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 충격적이었다. "낮에는 경찰과 행정기관의 공권력이 작동하지만, 밤만 되면 물리적 힘이 섬을 지배한다"는 그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지금이야 좋은 성능을 가진 배들이 자주 뭍과 섬을 오가며 사람과 물자를 유통시켜주지만, 섬은 오랜 세월 바다에 의해 단절된 세계였다. 공권력도 미미했다. 그런 세계는 자연히 힘의 논리가 우선하게 된다.

 몇 곳만 차단하면 신고하러 갈 수도, 탈출도 불가능하다. 주민들은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어쩌면 모두가 공범자가 되기도 한다. 꽤 많은 관객을 모은 영화 '이끼'에서도 그런 상황을 목도할 수 있다. 마을 이장이 최고 권력자이고 그의 말이 법이며, 누구도 저항하지 못한다. 다른 민족의 틈입을 거부하고 전쟁 중 학살과 성노예위안부 과거사를 한사코 인정하지 않는데 일치단결하는, 우리가 미워하는 일본인의 '섬나라 근성'도 이런 지리적 환경에서 형성됐을 터이다.

 그러나 아직도 섬은 낭만적 풍경의 대명사다. 우리나라는 3677개의 섬을 갖고 있다. 면적은 총 3547㎢, 전국토의 3.5%이다. 이 중 무인도가 3191개, 사람이 사는 섬은 486개다. 44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흑산도는 81년에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이번 여교사 성폭행 만행으로 '위험한 섬'이라는 인식이 퍼져 관광객이 전년도에 비해 35%이상 줄었다고 한다. 흑산도에 인접한 홍도까지 직격탄을 맞았다고 한다. 이번 사건은 흑산도 한곳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의 관계기관은 고립된 섬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정확히 파악하고 연구해, 근본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여교사는 도서 학교에 발령 내지 않는다는 것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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