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황금백만량 불여일교자)' 우석대학교 진천캠퍼스 정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문구다. '황금 백만 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독립운동가 안중근 선생이 여순 감옥에서 쓴 글을 인용한 것으로 교육을 중요성을 강조한 글이다.

 야드르르하던 남산골 숲이 그 어느 해보다 탱탱하게 여물어 가고 있다. 남산골 산자락에 터를 잡아 우리지역에 대학교가 들어서고부터 바람결이 더욱 생기롭고 야물어진 느낌이다. 수요일마다 신선한 바람을 맞는다. 거리낌 없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줄 아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렁인다. 분명 내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을 터인데 언제 그런 때가 있었나 싶다.

 우연한 기회에 안도현 교수의 강의를 접하게 됐다. 우석대학교 교양과목의 하나인 '문학의 산책' 시간이다. 학과목 이름부터 신선하고 정겹다. 기존의 '문학개론'에 해당되는 것을 이리 명명하니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듯하다. 열린 교육의 일환으로 지역주민 일부에게 무료 수강의 문을 열어 준 것이다. 문우 몇몇이 이 기회를 잡아 40여명의 젊은 대학생들 틈에 끼어 함께 수강하고 있다. 순전히 담당교수의 시가 좋아 찾아온 이들이다. 학생들은 우리 중년의 여인들을 이모님이라 부른다.

 한 학기동안 강의 중간 중간 다섯 차례 문학 산책을 나섰다.  농다리와 초롱길에 노랗게 꽃피어 있는 생강나무를 만나던 날, 교수님은 김유정의 동백꽃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한창 퍼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쓰러진 점순이와 소년 또한 딱 저만한 나이였으리. 그 후 포석 조명희문학관, 보탑사, 충북학생교육문학관을 거처 송강 정철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정송강사에 이르기까지 나들이 길에서 저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젊은이들과 눈높이를 맞춰보려 아득해진 기억을 더듬더듬 끄집어내고 보면 그들에겐 신기한 골동품이 된다. 세월의 강이 만들어낸 퇴적물이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내가 딱 저들만 했을 그 무렵, 장기 집권했던 대통령이 부하의 총탄에 시해 당했다. 18년 집권하는 동안 배고픔을 해결하며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가져온 그 이면에 유신 헌법의 폐해와 '긴급조치 9호 위반'이란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이 따랐던가. 그리고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는 광주사태 또는 폭동이라 했다.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현직 군인들이 수많은 민간인을 사살했다. 한동안 광주는 외부와 일체의 연락이 두절된 공포의 땅이 되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누구도 입에 올릴 수 없는 시간들이 박제돼 머물렀다. 그 후 다시 군부 정권이 득세를 하며 언론 또한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세대가 겪은 격동의 현대사에 대해 지금의 대학생들이 어찌 제대로 알 턱이 있겠는가. 부모님의 비호아래 호의호식 지내온 그들과 살아온 사회 풍토부터 달랐던 것을...... 그래도 구김살 없이 생기발랄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젊은이들이 좋다. 우리의 자식이요 미래이기 때문이다. 성숙으로 치닫는 남산길 숲과 그 산자락에 어우러진 젊음이 싱그런 6월, 햇살이 강하게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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