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충청시론
유월의 하늘에는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충청일보  |  webmaster@ccdailynews.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6.06.22  11:07:59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김복회 청주시 용담명암산성동장] 엊그제 모내기를 한 것 같은데 벌써 들판에 푸른빛이 감돈다. 들판을 바라보면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울컥울컥 솟는다. 아버지는 천생 농부였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농부인 아버지는 올곧고 성실하고 정직하셨다. 지지리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허리 한번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고생만 하시다 하늘나라로 가신지 올해로 19주기가 된다.

 아버지는 6월7일에 돌아가셨다. 제사는 대부분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지내지만 우리 아버지 제사는 양력으로 지낸다. 제사일이 현충일이기 때문이다. 현충일과 제사는 누군가를 기린다는 의미가 있어 그렇게 정했다. 그 중 제일 좋은 점은 식구들이 쉽게 많이 모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기도 좋아 근거리에 사는 사촌들과 올케들이 명절 때처럼 많이 모인다. 함께 모여 생전의 아버지를 그리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때면 서글픔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들을 하나씩 떠올리는 그 시간이 참 좋다.

 사촌들도 작은아버지인 우리 아버지를 무척 좋아했다. 각자가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에 대하여 이야기 할 때면 "맞아 맞아" 하다가도 잠시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 평소 엄마 집에 모이는 날이면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참 많이 하는 것은 그 만큼 아버지가 그립기 때문이었을 게다. "조금만 더 사셨어도..." 하는 아쉬움이 많다. 없는 살림에 자식이 일곱씩이나 되니 아버지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으리라. 아들을 낳으려고 딸을 여섯을 낳으셨다. 막내로 아들을 낳으시고 좋아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명히 떠오른다.

 남동생은 어린이날에 태어났다. 중학생인 필자는 공휴일이라 농사일을 도우러 집에 왔다가 남동생을 맞을 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논에서 일하시는 아버지께 막걸리를 가지고 가는 발걸음이 더없이 가볍고 신이 났다. 평소 무뚝뚝한 아버지가 막걸리를 드시며 "엄마, 뭐 좀 먹었니?"하고 물으셨다. 처음 들어보는 엄마에 대한 아버지의 관심이었다. 그만큼 좋으시다는 것일 게다.

 아버지는 없는 살림에도 자식들을 모두 대학까지 공부 시키셨다. 맏이인 필자만 제외하고 말이다. 둘째 여동생은 우리 동네의 '여자 대학생 1호'이기도 했다. 이런 아버지를 동네 어른들은 "쓸데없는 계집애들을 뭐 하러 가르치느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아버지는 학교만 보내주고 시집은 각자 벌어서 가라고 말씀하셨다. 필자부터 시작하여 여섯 자매 모두 자기 힘으로 벌어 시집을 갔다.

 막내까지 졸업을 하고 좀 여유가 생기기 시작할 때 아버지께 암이라는 것이 찾아왔다. 어이없게도 발병 2개월 만에 다시는 볼 수 없는 곳으로 아버지는 홀연히 떠나셨다. 이제 애들 다 졸업했으니 그간 못한 친구들에게 밥도 사고 술도 사줘야겠다는 말씀을 어머니께 듣고 한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자식들에게 당신의 의무만 다 하고 뭐가 그리 급해 황급하게 가셨는지 아버지께 묻고도 싶다. 유월의 하늘에도, 유월의 들판에도 아버지가 계신다. 오늘도 저 하늘 어디에선가 허연 잠뱅이를 걸치고 물고를 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충청일보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비주얼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