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C 말 테크놀로지 혁명이 바꾼 소비 패턴
기업들 판매 수익 높이려고 중독성 극대화

[충청일보 오태경기자]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독'된 채 살고 있다.

커피 중독, 담배 중독, 콜라 중독, 초콜릿 중독. 그런데 이 중독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 이제껏 대다수의 사람들은 중독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았다.

무절제와 탐욕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개인을 질책했다. 기계화와 대량생산, 자본의 힘을 이유로 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의 두 지은이는 우리 욕망을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꿔버린 거대한 변화가 있었고, 그 변화가 우리 모두를 소비 중독에 빠지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 변화를 이들은 '포장된 쾌락의 혁명'으로 명명했다.

실제로 19세기 말에 벌어진 테크놀로지 혁명은 인간의 소비 패턴과 감각을 완전히 바꿨다. 과거에 인간은 달콤함이라는 감각을 얻기 위해 단맛 나는 재료를 찾아 자연을 배회했지만,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포장만 벗기면 극도의 단맛을 즐길 수 있다.

불과 10~20년 사이에 맛있다, 달다, 밝다, 환상적이다, 시끄럽다, 향기롭다는 말의 의미는 혁명적으로 변했다. 이제 우리 미각은 웬만큼 달콤한 것에는 반응조차하지 않으며, 시각도 웬만큼 화려하고 반짝이는 것에는 잠깐의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감각을 자극하는 볼거리, 먹을거리, 들을거리, 즐길거리는 점점 더 화려하게 포장되고 있고 그러면서도 가격은 저렴해져 누구라도 돈만 내면 언제 어디서든 경험할 수 있다.
우리 감각은 이렇게 매일 조금씩 더 상품화돼 가고 있다.

이 책의 두 지은이는 바로 이 세계를 탐구한다. 평범한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열망으로 바꿔버린 포장 기술과 마케팅의 세계. 이들의 이야기를 따라 누가 언제 어떻게 왜 그 수많은 것들을 병, 캔, 상자 속으로 집어넣었는지를 파헤쳐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지난 2014년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피해소송을 제기하고 지금까지도 지난한 싸움을 계속해오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담뱃갑에 넣는 경고 그림의 위치를 두고 뜨거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들은 소송을 시작하기 한 달 전 담배규제와 법에 관한 심포지엄을 열고 담배소송 전문가로 꼽히는 세계의 석학들을 초대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이가 바로 이 책의 지은이 로버트 N. 프록터였다.

프록터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과학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80건이 넘는 흡연피해소송에서 전문가로 증언했다. 2014년에는 오랫동안 담배를 피우다가 폐암으로 숨진 남성의 부인에게 담배 제조업체가 손해배상금 173억과 24조원에 달하는 거액의 징벌적 배상금을 함께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을 이끌어내 이목을 끌기도 했다.

그는 펜실베이니아 주립대학교 교수로 있던 시절 무려 9년을 한 연구에 집중했고, 결국 전 세계 담배 산업을 흔드는 연구 결과물을 내놓았다.

이 책의 3장 '종이담배 이야기'에는 인고의 시간을 거쳐 나온 그의 연구 결과가 고스란히 소개돼 있다.

가령 과거 미국 원주민들이 피우던 담배는 중독성이 크지 않고 폐암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19세기 담배 회사들은 담배를 중독성 있는 기호품으로 만들어 판매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세웠고, 그렇게 역사상 가장 해로운 담배, 오늘날의 지궐련이 탄생했다.

속담배로 담배를 피우는 방식은 그 옛날 담배를 처음 태우던 사람들이 만든 방식이 아니라 담배 회사들이 담배를 속담배로 피우지 않으면 만족스럽지 않게 만들면서 생겨난 방식이다.

담배는 속담배로 피울 때 중독성이 극대화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담배 회사를 비롯해 당시의 거의 모든 제조업체들은 제품이 아니라 중독성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중독성이 소비의 패턴을 완전히 바꿨다.

이 책은 수많은 익숙한 제품들의 탄생기를 담고 있다. 카카오나무에서 난 쓴 열매가 달콤한 '허쉬 초콜릿'이 되기까지, 의례 때나 가끔 피울 수 있었던 담배가 종이에 포장되고 담뱃갑에 담겨 특정한 이미지를 갖게 되기까지, 도축장 부산물에서 나오는 젤라틴이 '젤로'라는 전에 없던 상품이 되기까지, 목소리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에서 축음기가 발명되고, 거듭된 발전을 거쳐 오늘날 MP3 플레이어가 출시되기까지의 이야기 등 익숙한 것들이 어떤 기술발전과 마케팅을 거쳐 지금 우리 곁에 오게 됐는지를 다양하게 소개한다.

오랜 시간 수집한 귀한 자료들을 하나씩, 마치 이야기하듯 설명하는 이들의 목소리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즐거움도 선사한다.

코카콜라, 네슬레, 필립모리스, 맥도널드, 코닥 등 다국적 기업들의 성장 과정과 이면에 감춰져 있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이 책을 읽으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다. 1만9500원. 4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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