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련 사회복지사

[정혜련 사회복지사] '신여성'이란 근대 여성의 출현은 19세기 후반으로 1870년대 전반기에 태어난 하란사와 조신성 등이 있다. 이들은 전통 가부장 남성의 지배와 전제로부터 벗어나 근대학교교육을 받고 1890년대 이후 사회에 진출했다. 이들은 자신의 인격과 개성에 대한 존중, 자유연애와 자유결혼, 정조에 대한 도전, 남녀평등과 여성해방 등의 쟁점을 공공의 차원에서 제기해 가부장적 사회에 도전했다.

 약 130년 지난 지금 현재, 그들의 후손이 얼마나 행복해졌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손엔 커피를 들고, 트렌디한 백을 들고,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것일까? 썸을 타며 즐겁게 연애를 즐기고 자유결혼을 하고, 전문직에 진출하여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있을까? 미디어를 통해 보는 그녀들의 모습은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이중노동시장(유리천장)과 이중노동(육아와 양육의 일방적 책임)으로 힘들어하고 있고, 데이트폭력과 가정폭력으로 고통 받고 있다. 커리어는커녕 경력단절로 취업조차 어려워 보인다. 자본주의 안에서 계층적 구조가 젠더문제로 넘어오면서 더욱 극심하게 나타나는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김치녀', '된장녀'로 불리며 오해를 받는 그들을 조금은 변명하고 싶다.

 '타자화'는 사회적 배제가 발생하는 방법으로 지배적 집단이 규범상태를 주장하고 그 집단 모두가 지배적 그룹과 관련하여 정의되어진다. 예를 들어 2014 여성의 전화 통계에서 가정폭력피해자 707명 중 남성피해자는 단 6명에 불과하다. 90%이상이 배우자와 과거 배우자에 의한 여성피해자임에도 '여자들 살기 좋아졌다'고 말하며 왜곡된 관점을 제공하니 안타깝지 않을 수 없다. 구조적 문제를 등한시하고 사회의 약자를 희생하여 얻어지는 이익은 영원하지 않다. 하물며 자명한 위안부 문제도 이리 어려운데, 우리는 어떠할까? 여기까지 오는 것만도 고생하고 수고했다. 21세기 신여성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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