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김재영 전 청주고 교장·칼럼니스트] 무더운 한여름 보름달이 뜨는 날이면 어머님 생각에 불효자는 마음이 어머님 계신 곳으로 달려갔는데 올해는 비가 계속 내리고 있는 별조차 볼 수 없는 밤입니다. 이 밤이 새면 어머님께서는 오랜 진통 끝에 불효자를 낳아주신 날입니다. 외손녀의 재롱떠는 모습을 보며 7남매를 키우시고 고생하시던 어머님의 모습과 더욱이 어머님께서는 12대종손 댁의 넷째, 아들로는 둘째 며느리로 시집오셔서 시부모님 모시고 손위 동서, 어린 시동생과 시누이들과 함께 생활을 하시며 둘째로 불효자를 낳으셨으니 편히 한번 쉬시지도 못하시고 산후에도 몸조리도 한번 못하셨을  어머님을 생각하니 가슴 저려옵니다.

 어디서 와서(生從何處來), 어디로 가느냐(死向何處去)는 인생의 숙제를 풀지 못한 채 산다는 것이 뜬구름과 같다(生也一片浮雲起)는 불가(佛家)의 말을 수긍한 채 불효자는 어머님이 떠나신지 열여덟 번째 여름을 보냅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불효자는 7남매를 키우시며 자식사랑에 쉬실 날(寧日)이 없으시던 어머님께 효도 한번 못해드리고 떠나신 후이기에 불효부모 사후회(不孝父母 死後悔)가 되었습니다. 회남자(淮男子)에 '산다는 것은 이 세상에 잠시 머무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본집으로 돌아가는 것(生寄死歸)'이라고 했지만 80을 넘기시지 못하시고 떠나신 어머님께 새해 아침마다 오래 사시기를 빌며 신년인사 글씨를 써 올리던 불효자는 어머님께서 남기신 유품(遺品)중에서 학수천세(鶴壽千歲)라는 글씨를 발견하곤 목 노아 울던 때가 어제 같은데 18년이란 세월이 흘렀으니 "세월의 흐름이 부싯돌 불빛 같다(石火光中)"고 했나 봅니다.

 결혼한 지 40년이 지나 아내의 음식 맛에 길들여져 있지만 중학교시절에 눈보라 치던 날 한금령을 넘어 귀가하면 어머님께서 챙겨주시던 된장찌개 맛과 보천역에서 통학하던 고교시절에 임시열차의 기적소리에 아침식사를 못하고 나온 아들에게 역(驛)까지 비빔밥을 갖고 오셔서 먹여 등교시키시던 어머님의 남다르신 사랑과 그 비빔밥의 맛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지주의 맏딸로 태어나시어 몰락한 양반가에 출가하신 어머님의 근면절제하며 살아오신 세월이 있었기에 저희들 7남매는 구김살 없는 어린 시절을 보낼 수 있었고 가정의 소중함을 알고 자랐습니다. 생일이라고 아들, 딸과 손녀들의 축하를 받다보면 산후에 몸조리도 못하셨을 어머님의 모습이 떠오르며 살아계실 때 숙수지공(菽水之供)하지 못한 불효자는 가슴 저리며 이날을 보냅니다.

 홀로 계시다 아버님과 함께 계시니 외로움은 벗어나셨겠지요. 어머님, 이제 그동안 자식들 뒷바라지하시며 아버님과 단란한 시간이 없으셨는데 밀리신 말씀 나누시며 모든 걱정 놓으시고 편히 쉬시옵소서. 어머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열심히, 그리고 건강하게 생활하며 이 여름을 보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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