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폭우가 한차례 지나가고 난 탓인지 온 몸으로 묻어나는 찐득한 땀이 기분을 묘하게 한다. 별일 아닌 일에도 공연히 심통이 틀어지려고 할 때가 있다. 늘 동동거리며 살아 온 탓인지도 모른다. 어제보다 나아지기 위해 할 것도, 가 볼 곳도, 보고, 듣고 배워야할 것도 많은 시대가 되었다. 그러다보니 마음의 여유 없이 늘 시간에 매달려 뛰어 다닐 수밖에 없다.

 가뭄 끝에 내리는 비소식이 반갑다.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며 칠월의 장맛비를 즐겨보자고 우산을 들고 나섰다.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내리던 비가 잠시 멎고 드러난 하늘이 고요하다. 하지만 오랜만의 여유는 오히려 어색했다. 비가 내리고 난 뒤의 하늘은 청명하고 맑았다. 솔잎사이로 불어오는 바람결이 마음을 생결하게 해 주었다.

 남보다 더 채우기 위해 더 갖기 위해 열심히 산다는 것, 그것이 정말 우리들의 궁극적인 목적일까? 너무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무엇이 더 중요할까?  "인생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다. 복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가 복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람은 언젠가는 누구든지 다 죽는다. 단지 조금 이르거나 늦거나 할 뿐이다. 갈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간다. 사랑 하는 이도 두고 귀하게 여기던 것들도 모두 두고 가야한다.

 살아가는 동안에 겪었던 숱한 일들, 우리의 삶 속에서 모든 희, 로, 애, 락 모두 저 하늘에 구름이 모였다 사라지듯, 결국 사라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해 우리는 죽을힘을 다한다. 언젠가는 죽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두가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 소멸됨을 위하여 죽을힘을 다하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또다시 폭우가 쏟아진다. 모든 것들을 다 떠내려 보낼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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