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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의 길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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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7.14  16: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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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희 수필가·前 진천군의원] 정선 아라리촌 입구다. 천 원짜리 세 장의 아리랑 상품권, 그것은 맛깔 나는 미끼였다. 정선 아라리촌에 들어가려면 삼천 원의 입장료를 내야한다. 입장권은 그 금액만큼의 상품권으로 주어진다. 정선의 몇몇 지정된 곳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관광객은 입장료를 냈어도 공짜인 셈이지만 지역 상권은 산다. 깜찍한 아이디어를 진천에서도 활용할 궁리를 해보며 느긋이 아라리촌을 둘러본다.

 이곳은 정선의 옛 주거문화와 생활 풍습을 엿볼 수 있도록 생활상을 재현해 놓고 있다. 굴피집과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은 우리지역에서는 보지 못했던 지붕의 형태라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그 외에 생활상은 여느 지역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가장 자연스러운 풍광의 어우러짐이 정겹다. 특히 연암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의 주인공이 동상으로 곳곳에 조성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소설의 배경이 정선인 까닭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과 장면들의 묘사에서 양반과 상민들의 해학 넘치는 모습은 절로 미소가 물린다.

 예나 지금이나 초라한 행색으로 남 앞에 조아린 모습이기보다는 갓 쓰고 도포 입은 양반의 풍모가 역시 폼이 나 보인다. 양반증서를 발급해 주는 코너가 눈에 띈다. 소설 속에서는 1,000석이나 되는 양반의 빚을 갚아주고 얻은 양반증서를 여기서는 무료란다. 슬그머니 공짜로 증서 하나 받아들고 양반이 되어 볼 요량으로 머리를 디밀고 보니 늘어선 줄이 길다. 상민을 자초하고 서 있는 꼴이다.

 앞선 이들이 받아든 증서에서 '양반의 덕목'이 눈에 들어온다. "야비한 일을 딱 끊고 예를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할 것이며 입으로 구차스러움을 남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새삼 양반의 덕목에 구속되는 것도 거슬리고,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도 없어 발길을 돌렸다. 아무래도 양반의 기질이 못되는 성싶다.

 양반의 길과 상민의 삶에 대해 잠시 생각이 머문다. 조선시대 박지원은 소설 '양반전'을 통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허울뿐일지라도 양반이란 이름으로 무위도식하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사는 사람들이 허다했다. 서민들은 성실하게 힘써 재산을 모으며 남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늘 굽실거려야 했다. 오죽하면 양반을 돈으로라도 사려 했을까. 감당할 깜냥도 못되는 주제에 돈 주고 양반을 사겠다고 줄을 선 사람도, 양반이란 허울에 몸을 숨기고 나라를 좀먹는 사람도 조선시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당시 연암 박지원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 오늘날도 유효하다.

 어쩌다 돈푼깨나 모은 졸부가 함량 미달은 아랑곳하지 않고 의원이나 관료 한 자리 해 먹겠다고 고개를 들이밀고 있는 행태를 무수히 본다. 신분세탁이다. 인간의 가치가 증서로 평가될 수는 없지 않는가. 주목하는 서민의 눈초리가 매서워지고 있다는 걸 알아채야 할 게다.                  

 소설 속의 그 부자는 거액을 주고 양반 신분을 사긴 했지만, 제 깜냥과 분수를 알고 포기할 줄도 알았으니 그만하면 인간적이고 귀여운 양심가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풍자와 해학이 가득 담긴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을 뒤로하고 차에 오른다. 양반의 길과 서민의 길, 그 진정성의 기준은 무엇일까. 문득 내 삶의 행태는 어떠한 모습인가? 상념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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