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혜영 서원대 교수

 [황혜영 서원대 교수] 영화는 어떻게 역사를 기억하는가? 프랑스 누보시네마 감독 알랭 레네의 영화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은 역사적 사실을 극적인 표현에 담아 문화적 기억으로 전이시킨다. 작품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평화에 관한 영화를 촬영하느라 히로시마에 머물게 된 프랑스 여배우가 일본 남자와 만나 짧은 시간 함께 사랑을 나누게 되는 내용이다. 전쟁 막바지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상흔을 상기하며 서서히 회복되어가고 있는 히로시마에서 여주인공은 낯선 연인과 사랑을 하면서 1차 대전 동안 고향인 프랑스 느베르에서 만난 독일 병사와 나눈 첫 사랑의 추억과 상실의 아픔을 회상하면서 사랑을 기억해내는 것과 동시에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흡사 메마른 땅에 풀이 말라붙어 있는 것 같은 검은 바탕의 흰 무늬 이미지는 차츰 풀이 땅 위로 뻗어가는 변화된 이미지로 다시 등장하면서 전쟁의 폐허에서 서서히 도시가 복구되고 생명력이 되살아나는 모습을 상기시킨다. 또 껴안은 채 서로의 몸을 어루만지는 남녀의 클로즈업된 상반신이 히로시마 도시에 남은 상흔의 이미지들과 반복해서 번갈아 나오는데, 남녀의 몸은 재와 같은 것으로 덮여 있다가 반복되어 나오는 동안 재가 서서히 금빛 가루처럼 변하더니 쓸려나가고 땀에 젖은 매끈한 몸으로 변화되어 전쟁의 잿더미가 씻겨 나가는 히로시마의 역사적 기억을 형상화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사랑과 집단적인 역사를 하나로 연결시켜준다.

 영화는 1, 2차 대전의 역사적인 순간들을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객관적인 사실로 전달하는 대신 도시의 이미지와 사랑의 기억을 통해 역사를 극화시켜 표현하는가 하면 히로시마 박물관에 전시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원자폭탄이 남긴 전쟁 참상의 역사적 자료들과 영화 속에서 촬영하는 전쟁에 대한 연출된 장면에 역사의 기억을 투사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영화는 극한 상황의 역사적 사실들을 객관적인 서술 대신 여주인공이 간직한 과거 느베르의 기억과 현재 히로시마를 응시하는 시선이 투사된 극적인 이미지에 담아낸다. 그녀의 의식에 따라 잠든 일본인 애인의 꿈틀거리는 손은 14년 전 느베르에서 총에 맞아 쓰러진 채 죽어가던 독일 애인의 꿈틀거리는 손의 이미지로 이어진다. 이후 느베르와 히로시마 이미지는 계속 교차되면서 뫼비우스의 띠처럼 현재와 과거가 하나의 시간으로 이어진다.

 영화는 전쟁의 상처와 사랑의 기억이 하나로 녹아 있는 두 도시 히로시마와 느베르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여주인공은 히로시마 도시의 크기가 바로 자신의 사랑의 크기와 같다고 말하며 도시에 각인된 전쟁의 기억에 자신이 간직한 기억을 동일시한다. 프랑스 여인과 일본 남자는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한다. '히로시마는 내 사랑' 그리고 '히로시마와 내 사랑'의 모호한 이중적 의미를 동시에 상기시키는 작품 제목처럼 영화 마지막에 두 연인은 서로를 히로시마와 느베르로 부르며 자신의 사랑의 크기를 도시의 몸에 포개고 역사와 기억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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