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병진 정신과 전문의

다른 사람보다는 눈치가 빠른 둔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약간은 자랑스러워하며 얘기하는 사람들을 간혹 보게 된다. 무슨 얘기인가하고 들어 보면, 자신은 상대방이 무슨 의도로 말하는지를 그 사람이 하는 한두 마디의 말을 들어보고 표정이나 몸짓을 보면 대화를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사람의 의도를 알게 된다는 뜻이다.
상대방은 나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고 있지만, 정신과 의사 입장에서 바라보면 이렇게 판단이 빠른 사람은 그 만큼 강한 노이로제에 사로 잡혀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눈치가 빠르고 빠른 판단을 하려면, 이미 상대방의 표정과 말에 반응을 빨리 할 수 있는 생각의 틀이 작동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방의 몇 마디 말과 순간의 표정을 근거로 해서 자신의 가지고 있는 몇 개의 틀 중에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상대방은 이럴 거야'라는 생각의 틀을 사용할 수 있다.
만약 마음속에 생각의 틀이 자리 잡고 있지 않다면, 상대방의 말을 한참 들어 보고, 더 알아보기 위한 질문을 하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궁금증을 갖고 깊게 이해를 해야 상대방을 적절하게 판단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언뜻 보면 느리고 둔한 사람처럼 비춰질 수 있겠지만, 사람들은 느리고 둔해서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느린 사람과 대화하고 관계하기를 좋아 하며 따라서 쉽게 판단하지 않고 '난 당신을 잘 모릅니다. 따라서 당신을 이해하려면 주의를 기울여 한참을 들어 봐야합니다'라는 태도를 가진 사람에게서 자신이 존중받는다고 느끼게 되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주게 될까? 눈치가 빠르다고 자부하는 사람은 타인의 말 몇 마디를 듣고, '이런 것 아냐?'라고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미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생각의 틀 중에서 몇 마디 말을 듣고 적합하다고 생각한 하나를 불러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더 이상의 말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게 된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이미 자신에 대해 어떤 판단을 했고, 그 판단 중에는 틀린 부분도 있어서 답답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판단한 것 중에 어떤 것을 잘 못 됐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 피곤하고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도 있다는 생각에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
눈치가 빠른 사람은 타인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만들고 마음의 문을 가급적 열지 않게 만들며 소통을 방해 한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것을 천천히 바라봐야 하고, 타인의 언행에서 어떤 판단이나 감정을 느끼게 될 때, 자신이 올바르게 느낀 것인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상대방에게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강한 감정을 느끼는 상황일수록 감정에 휩싸여 빠른 판단을 했을 가능성이 많다.
빠른 만큼 틀린 판단을 하고 그 만큼 타인들에게 대화하고 나면 답답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전달하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직장과 가정에서 그 만큼 실패를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충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