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우리나라 사람이 살면서 누구나 가장 많이 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말일 것이다. 밤잠을 자고난 후 눈을 뜨면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고 가정에서 학교에서 또는 직장에서도 서로 말하며 하루를 보낸다. 말로 인해 행복하고, 혹은 불행하며 말 덕분에 삶이 이루어지니 말처럼 위대한 것이 없다. 이왕이면 기분 좋고 고마운 말만 듣거나, 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긍정적인 뜻을 가진 속담도 있지만, '말은 앵무새', '말은 이 죽이듯 한다' 등 말에 대해 부정적인 속담도 있는 것을 보면 좋은 말만 하고, 듣기 좋을 수만은 없는가 보다.

 학창시절 학생을 향해 교단에 선 담임선생님이 하던 "쓰레기 같은 놈들만 모였군"이란 말을 40년이 넘도록 잊지 못한다. 칼이나 도끼가 내리치는 것 같은 아픈 말로 사춘기를 보낸 소녀의 가슴은 상처가 나서 평생토록 흉터로 남아 있다. 무심히 짓는 구업의 위력과 죄과가 얼마나 무서운지 익히 알지만 우리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남은 세월 계속해서 구업을 짓을 테니 말의 험난한 고개를 넘을 길이 막역하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망언을 쏟아내고 지인이 하는 말에 마음을 베인 어느 날 온종일 반쯤은 정신이 나간 적이 있다. 신문과 방송, SNS에서 유독 혹독한 말을 만났다. 개와 돼지가 거론되고, 금방이라도 구역질이 나는 깔창 생리대의 문제를 생산업체에만 떠넘기며 정부는 나 몰라라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공식적인 '세월호특조위'는 해체되었고 대우조선의 현 실정에 깊이 관련된 국회의원의 알량한 전당대회 출마 포기 소식도 있었다. '서별관회의'의 진실은 무엇인지 밝혀지지도 않았는데 눈 가리고 하늘을 본다고 하늘이 그 얼굴을 못 봤다고 하려나. 국가의 저출산 실태가 보도되고 하릴없이 집안에서 뒹굴며 부모의 눈총을 따갑게 받는 청년실업과 근로자의 뼈를 갉아먹는 자본가들의 행태를 듣는 것도 끔찍하다. 자신이 정규직인지 비정규직인지도 모르고 매일 출근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근로자도 안타깝다.
 
 국민은 국익의 해만 된다고 강력하게 반대하는데 국내에 사드 배치가 확정되고 성주에서 평생을 사는 필자의 친구는 매일 고향을 지키겠다고 시위현장에 나가고 있다. 주민설명회뿐 아니라 현장방문도 단 한번 없이 직격탄을 맞고 보니 기가 막히더란다. 나라가 국민을 향해 아무 때나 군사기습 작전을 벌인 셈이고 오히려 시위를 벌이는 성주 시민을 향해 불순 세력을 운운하고 있으니 주민의 원성은 나날이 높아간다.

 이 모든 소식은 정말로 감추고 싶은 진실을 묻기 위한 행보는 아닌가 한다. 감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시선을 엉뚱한 데로 돌리는 것에 국민은 이미 익숙해졌다는 사실을 아직도 모르는가. 조선시대 작자 미상의 시조에 '말로서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라는 대목이 있다. 그 시대도 말은 여전히 많았으니 이런 시조가 생겼을 것이다. 때론 침묵하며 말이 금으로 변하여 이 시대가 회복되길 바란다. 장마철에 홍수가 나지 않기를 간절히 비는 마음으로 말의 홍수를 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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