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트 슈페어·마티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수장관인
알베르트 슈페어 '논란의 저서'
20년 형 선고 받고 수감 중 작성

[충청일보 오태경기자] 이 책의 저자 알베르트 슈페어는 아돌프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했던 3제국(1933~45)의 핵심 세력 가운데 비교적 덜 알려진 인물이다.

선전장관 요제프 괴벨스, 나치 친위대 창설자 하인리히 힘러, 게슈타포 창설자 헤르만 괴링 등이 히틀러의 최측근이자 제국의 실세로,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가해자로 수없이 언급돼 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슈페어가 이들만큼 세간의 호기심을 끌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는 지극히 '정상적인' 인물이었고 얼마 되지 않은 지식인(괴벨스를 제외하면 거의 유일한)이었다. 그리고 히틀러의 건축가이자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군수 물자 생산을 총괄한 군수장관이었으며, 무엇보다 그 스스로 고백하듯 "히틀러의 친구"였다.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나치 각료 중 유일하게 교수형을 면해 20년 형을 선고받은 슈페어는 2만 2000여 건의 문서를 바탕으로 회고록 '기억'을 완성했다.

"이제 회고록을 쓰시겠군요?" 재판에서 살아남은 슈페어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그는 수감 첫 달부터 회고록의 초고라고 할 만한 글을 써내려갔고, 1953년부터는 체계적으로 원고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66년 10월 슈판다우 형무소에서 출소한 그의 손에는 2200쪽 분량의 원고가 들려 있었다.

슈페어는 엄청난 메모광이었고, 각종 업무일지, 총통의사록, 편지, 전보 등 기밀문서에 접근할 수 있었던 군수장관이었다. 2만 2000여 건에 달하는 문서를 바탕으로 쓴 이 책은 나치의 실상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예컨대 반유대주의로만 이해되는 히틀러의 인종주의는 체계적인 사고라고 부를 수 없을 만큼 조야한 편견의 산물이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연거푸 금메달을 목에 건 흑인 육상 선수 제시 오언스를 두고 "정글 출신의 흑인은 미개하지만 체력은 문명화된 백인보다 강하"다고 하며 흑인과 시합을 벌이는 건 공정하지 못하다고 주장하거나(117쪽), 영국군의 체격을 조롱하는 장면(204쪽)에서 우스꽝스런 인종주의의 실체를 만나볼 수 있다. 한편 핵물리학을 유대인의 학문으로 치부하고 무시한 히틀러의 편견은 오히려 다행스럽다.

"히틀러에 관한 가장 내밀한 묘사"라는 '뉴욕타임스'의 평가대로 '기억'은 매 쪽마다 내부자가 아니고는 절대로 알 수 없는 에피소드와 사건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히틀러의 건강염려증과 사이비 의사에 대한 맹신, 기이한 식생활과 반려견에 대한 애정, 사치스러운 히틀러의 애인으로 알려진 에바 브라운의 속사정, 독특한 옷차림을 선호했던 괴링의 취향, 관료주의로 부패하고 있던 나치 정권의 이면 등이 독자들의 눈을 사로잡는다.

또한 '작전명 발키리'라는 영화로 만들어져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의 전모 역시 이 책에서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슈페어는 "나는 단지 과거를 기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래에 경고하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모든 책임을 히틀러에게 떠넘기는 동료들을 "수백만 마르크를 받는 우편배달부"라고 비난하며 "지도부의 집단 책임"을 인정한 유일한 피고인이었으며, 이 책 전반에 걸쳐 지식인으로서 비판적으로 사유할 책무를 잊었던 과오를 반성한다.

하지만 슈페어의 자기반성은 자기변명일 뿐이라는 비난은 여전하다.

단순히 그가 교수형을 면해 못마땅해서는 아닐 것이다.

슈페어는 나치 정권을 유지시키고 2차 세계대전을 연장시킨 권력자였고, 동시에 철저히 나치당 당원으로서 활동한 괴벨스나 악의 고리 끝에서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며 홀로코스트를 거리낌 없이 자행한 아이히만과 같은 선상에 놓을 수 없는 지식인이었다.

그래서 그의 뒤늦은 반성과 참회가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는지도 모른다.어쨌든 슈페어는 목숨을 부지했고, 우리에게 제3제국의 속살을 살펴볼 기회를 남겼다.

이 책은 "히틀러에 관한 가장 내밀한 묘사" 또는 "세상에서 가장 두꺼운 자기변명"이라는 평을 받으며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모든 악이 폭발하고 남은 잔해더미 위에서 책임과 반성을 외친 그를 어떻게 판단할지 선량한 나치로 기억할지 아니면 잔악한 전범으로 기억할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일 것이다.8만7000원. 8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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