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일보 사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면서 8월 한 달 더운 날씨만큼이나 논란이 불붙었던 주택용(가정용) 전기의 누진제 개선, 이른바 전기요금 개편 문제가 조금은 잠잠해졌다. 벌써부터 '여름 한 철 관심사였다가 계절이 바뀌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는 예전의 행태가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아무리 날씨가 선선해져 살만하더라도 20년 가까이 지속해 온 전기요금 개편이 마무리돼야 한다.

급한 대로 정부와 여당이 올 7~9월 3개월 동안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구간의 폭을 50㎾h씩 넓혀주는 방식으로 완화키로 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일 뿐이다. 가장 낮은 요금과 높은 요금의 차이가 11.7배나 되는 기존 배율은 그대로여서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실질적인 요금 혜택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듯 사용량은 전달보다 40% 조금 넘게 늘었지만, 요금은 130% 이상 폭증했다는 불만이 인터넷 사이트에 떠오르고 있다. 물론 일부의 사례라 하더라도 때가 되면 떠들다 잠잠해지는 예전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

전기요금 개편 문제는 지금까지 수차례 있었지만, 결실을 보지 못했다. 17년 전인 1999년에도 에너지경제연구원이 정부로부터 의뢰받은 용역 보고서에서 주택용 누진제의 폐지 필요성을 제기했다. 2003년까지 누진제를 없애고 산업용 전기요금의 10% 인상, 전기료 원가연동제 도입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정부는 서민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일시적으로 늘어나는 사용량을 줄이면 된다는 식으로 누진제를 고수했다.

누진제 개편 필요성은 이후 정부에서도 꾸준히 있었다. 2006년에는 한국전력이 스스로 2010년까지 누진제를 3단계로 축소하겠다고 했지만, 정부와 의견이 맞지 않아 없던 일로 돼버렸다. 2008년에도 정부가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안 공청회에서 주택용 누진제를 단순화하겠다고 했지만 역시 진척을 보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현 정부에 들어와서도 201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국정 과제에 누진제 문제가 들어있었지만, 지금까지 끌어오다 올해 유례없는 폭염으로 국민이 생고생하면서 다시금 현안으로 주목받았다.

이후 한시적으로 주택용 누진제를 완화하는 대응책이 나왔지만, 국민 부담을 덜어주는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이참에 전기요금 체계를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나온 게 통신요금처럼 소비자의 생활 방식에 맞춘 요금제인데 아직 명확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전기요금 개편 필요성은 주택용 누진제로 불거졌지만, 상대적으로 비싼 교육용과 그렇지 않은 일반용과 산업용 등의 괴리가 크다. 이 때문에 살인더위에도 학교는 전기요금이 겁나 있는 에어컨도 제대로 켜지 않는 반면, 상가에서는 에어컨을 켠 채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끌어들이는 개문영업이 성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는 전기요금 체계를 국민의 희생과 양보 속에 지탱하는 편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민이 마음 편하게 자신이 쓴 것만큼 적정한 부담을 지는 것, 그게 복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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