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도마 위에서 야채를 썰고 있는 남자의 현란한 칼질이 수십 년을 주부로 살아온 나는 가히 흉내도 낼 수 없는 경지이다. 나비넥타이에 꽃미남 요리사가 마술처럼 요리를 척척 해내고 있다. 먹기도 아까울 만큼 아름답게 데코레이션을 마친 요리가 출연한 연예인들의 탄성을 자아내면서 참을 수 없는 구미를 당기게 한다. 앞치마를 두르고 일사 불난 하게 요리를 하는 그의 모습은 어느 연예인보다도 더 근사해보였다. 흰 셔츠 옷소매를 걷어 올려서 여실히 드러난 꽃미남 요리사의 건강한 팔뚝 근육은, 먹음직스런 요리만큼이나 시선을 끌며 회자되고 있었다.
 
 아침방송에서 조곤조곤 맛있는 요리솜씨를 보여주었던 유명한 여자 요리 선생님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남자들이 그 자리를 점령해버렸다. 채널을 여기 저기 돌려보았지만 요리 프로그램이 넘쳐난다. 멋진 남자 쉐프님들이 대세이다. 그들은 유명 연예인들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중학교 때 한문시간에 선생님께서 男子 라는 한자어를 설명해주실 때에 밭 전 자에 힘 력 자로 만들어진 남자란 뜻은 건강한 힘으로 밭을 열심히 갈고 가꾸는 사람이라고 했다. 내 기억속의 남자는 그렇게 힘의 존재였다. 그러던 남자들이 이제 요리를 하고 육아를 하고 있다.

 언제인가부터 힘을 써야할 일들은 최첨단기계가 하고 있고 머리를 써야 할 일들은 컴퓨터가 알아서 더 잘해주고 있으니 남자들은 그 힘의 원리에서 벗어난 세상을 살게 된 것이다. "생각하라 고로 존재 한다." 라는 말도 이제는 생각은 인공지능 알파고가 알아서하니까 "관계하라 고로 존재 한다." 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고 한다. 남자들의 힘의 논리와 두뇌의 우수성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라서 그들이 요리를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리를 전적으로 담당하고 육아를 숙명처럼 생각하며 살아왔던 여자들은 앞치마를 벗어던지고 하이힐로 넥타이 부대를 서서히 점령해가고 있는 중이다. 섬세하게 똑똑한 여자들의 능력은 힘의 원리를 능가하는 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원시시대처럼 모계사회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지 역할분담이 서서히 바뀌어 가기도 하고 거부감 없이 순응해가는 분위기이다.
 
 우리는 여자가 대통령을 하는 나라에 살고 있고 미국의 힐러리도 클린턴의 적극적인 외조를 받으면서 지금 승승장구 하고 있는 중이다.
결혼 전에는 아무리 배가고파도 라면 하나를 손수 끓여먹지 않던 아들이 결혼을 한 후에는 요리 레시피를 냉장고에 덕지덕지 붙여놓고 요리 삼매경에 빠졌다. 부지런히 설거지를 하던 아들이 곁눈으로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텔레비전 프로를 보고 있다. 쌍둥이 아이들을 돌보는 아빠들의 모습을 보면서 아들이 푸념 섞인 말투로 투정을 한다. "이제는 요리도 잘하고 아이까지 잘 키워야 좋은 남편, 좋은 아빠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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