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이득수 서울취재본부장] 마약은 함께 한번 빠지면 죽을 때까지 끊기 어렵다고 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도박은 마약 못지않게 위험하다. 그런데도 대부분 국가에서 합법화·산업화하고 진흥하고 있다. 큰 사회 문제를 국가가 앞장서서 키우는 격이다. 폐광산업 합리화와 지역주민 소득증대를 명분으로 세워진 강원랜드는 내국인도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 도박장이다. 새만금에도 내국인 출입 가능한 카지노를 세우겠다고 해서 강원도와 갈등을 빚고 있다.

 정부의 도박에 대한 태도는 이중적이다. 사설도박은 눈에 불을 켜고 단속하지만 경마와 경륜·경정 카지노 등은 '사행산업'이라는 이름으로 확산시킨다. 겉으로는 '건전한 레저생활'이라고 포장한다. 수입의 일부를 공익적인 목적에 사용한다는 것이 도박사업을 국가가 독점한 명분이다. 국가주도 사행산업이라는 것도 참여자들이 요행을 바라고 돈을 거는 도박심리를 기초로 이뤄지기 때문에 결국 도박이다. 이론적으로 100만원으로 한판을 하면 법정 환급금이 72%이므로 참여자들의 돈은 72만원이 남는다. 28만원은 세금과 사업자의 수익금으로 빠져나간다. 반복하면 다 털리는 결과가 뻔한데도 참여자들은 인생역전을 기대하고 베팅한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합법적 도박산업의 총매출은 20조 5042억원이다. 여기서 환급금을 뺀 순 매출액은 8조 8121억원이다. 조세수입은 2조 4153억원, 기금 수입은 3조 4294억원, 나머지는 사업자 수입이다. 2011~12년을 경계로 감소하거나 정체되는 양상이지만, 도박장에 드나드는 '건전한 레저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만든 돈이 매년 8~9조원이나 된다니 놀랍다. 좋은 일에 쓴다고는 하지만 코스프레에 지나지 않는다. 사회적 피해는 그 이상일 것이다.

 도박은 필연적으로 많은 루저(패자)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반사회적이다. 도박의 폐해는 엄청나다. 한번 잭팟(대박)을 터뜨리면 엔돌핀과 그보다 강력한 환각작용 물질인 도파민이 분출돼 극도의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데, 돈도 돈이지만 이 쾌감을 잊지 못해 도박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만 3만 6908명이 도박중독 치유 상담을 했다.

 이런 판에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운영하는 경륜경정장은 5일간 이어지는 이번 추석연휴 기간에도 이틀을 문을 연다고 한다. 국민적 잔칫날까지도 국민을 도박장으로 끌어내 매출을 올리겠다니 그 그악스러움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지난해부터 설날과 어린이날, 현충일, 광복절에도 영업했다. 현충일에는 술집도 문을 안 여는데 국가가 도박판을 벌였으니 국민들에게 "경건하게 애국선열을 추모하라"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겠다는 배경엔 정점을 지난 사행산업의 사양화 추세와 관련이 있다. 공기업 구조조정 압박을 정규직 숫자나 급여를 줄이는 대신 매출 증대로 해결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마사회나 체육공단은 신의 직장으로 불린다. 현금이 하루에 수백억 원씩 들어오는 곳답게 웬만큼 근속한 정직원은 억대 연봉자다. 도박 외에 인생역전의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 손목 비틀어서 직원들 배 채워주는 격이다. '도박 공화국'의 현실이 이렇다. 도박 산업이 아무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 해도 금도가 있어야 한다. 아니면 제대로 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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