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정숙 수필가

[육정숙 수필가] 요즘 들녘을 나서면 가을향기가 오감을 자극한다. 모내기를 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벼이삭은 고개를 숙이고 황금빛으로 변했다. 바람이 누렇게 익은 벼이삭 사이로 휘돌아 나오면, 푸르고 싱싱한 향기가 코끝으로 진하게 스며든다. 저 멀리 과수원에서는 사과가 발갛게 익어가고 포도 농원에서는 포도 단내가 퍼져온다.

 가을의 공간은 너무나도 황홀하고 맛깔스럽고 멋이 있다. 자연의 변화는 오묘하다. 그 변화 속에는 우리 인간들도 포함이 된다. 하지만 우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르기 보다는 좀 더 편해지기 위해 그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기에 급급한 것은 아닌지 돌이켜 보아야 할 일이다. 어떻든 나는 이 시간에, 이 공간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가진 것이 없어도 주머니가 비어 있어도 아름다운 모습들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 행복하고 가을 길을 건강한 모습으로 걸을 수 있어 행복하고 무엇보다 살아있기에 행복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누구나 누리고 있는 이 평범한 것들을 전혀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보는 것, 걷는 것, 숨 쉬는 것, 등등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이 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자연스레 할 수 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힘들고 괴롭다고 많은 것들을 체념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희망이 없는 사람은 변화를 가져 올 수가 없다. 지금 힘들다고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뜨거웠던 태양빛을 견디고 자연은 향기로운 결실들을 이 세상으로 마음껏 드러내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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