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자 수필가

[한옥자 수필가] 외모로 나이를 가늠하기 어렵기는 청년이나 노인이나 마찬가지다. 동안을 가진 사람뿐 아니라 겉늙어 보이는 사람을 상대로 나이를 묻는 것이 실례가 될 때도 있다. 어려 보여서 사회나 직장에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호소하는 젊은이도 있고 늙은 것도 서러운데 본 나이보다 더 나이가 들어 보인다는 말을 듣고 나면 사는 맛이 나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지인도 있다.

 건강은 신체의 나이를 거꾸로 먹게 만드는 비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너도나도 모두 건강하게 살기 위해 애를 쓴다. 그러나 도로 위에는 척추가 휘고 걸음걸이가 온전치 못한 노인들의 손수레가 넘친다. 경제협력기구에서 우리나라가 노인의 빈곤율과 자살률이 1위란다.

 운전하고 가다가 차가 다니는 도로 위에 폐지를 줍는 노인의 손수레가 보이면 아무리 급해도 속도를 줄이고 서행을 하며 뒤를 따른다. 도로의 교통법규조차 모르는 노인은 힘에 부치는 수레의 바퀴를 돌게 하려고 애를 쓰느라 뒤에서 옆에서 차가 달려와도 인지를 못하니 차가 피해주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 살아도 떳떳하게 살면 된다지만 인생의 황혼을 맞아 구부러진 등을 더 구부려야 떳떳한 삶을 유지할 수 있다면 젊은 날에 반듯하게 살려고 할 사람이 있을까. 노인인지 아닌지를 가르는 기준 연령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이란다. 지난 5월에 대한노인회가 스스로 노인의 기준 연령을 70세로 높이기로 했다더니 뒤에 숨은 뜻이 있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신체의 늙음을 애써 부정하며 목청 높여 외치는데 나라가 이에 장단을 맞추어 준다. 5년이나 노인이 됨을 연장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그러나 노인은 노인이되 노인이 아닌 척 해주는 이유는 각종 법령에 노인의 기준 연령이 65세로 정해져 있다 보니 정부의 재정 부담이 커 슬쩍 나이를 올려서 기초연금 예산을 줄여볼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일정 나이가 되었다고 근로자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근로계약을 소멸시키는 정년퇴직의 나이는 그대로 두어야 하나. 정부와 국회도 정년 연장에 대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전력은 지난 7월부터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늘렸고 대신 56세부터 정년 장형 임금피크제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에 이어 공기업들도 이 제도를 확산하려고 한단다.

 정년을 연장하고 나서 생기는 후유증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가뜩이나 어려운 청년의 일자리는 누가 만들어 주나. 필자뿐 아니라 대다수 가정의 아버지는 정년을 앞두고 고뇌하고 자식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아버지들이 물러나야만 자식의 일자리가 창출될 실정이다. 젊음이 취업 문제로 시들고 있다. 인간의 행복을 판가름하는 것이 돈이 아니길 바란다. 하지만 노인에게 돈은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니 노인이라는 호칭을 5년이나 연장해 준들 무슨 소용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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